정치는 왜 늘 ‘명단’과 ‘기금’을 동시에 욕망하는가
Hatched by porcorosso
May 1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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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선을 넘는 순간, 민주주의는 두 번 무너진다
어떤 권력은 사람을 직접 해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을 분류하고, 돈을 재배치하고, 책임을 흩어버린다. 체포 대상 명단이 오갔다는 의혹과, 예술인 생활안정자금이 엉뚱한 제도 실험에 쓰인다는 비판은 겉으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 다 같은 질문을 건드린다. 국가가 개인을 대할 때, 보호의 언어로 통제와 전유를 포장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민주주의의 붕괴가 늘 쿠데타 같은 장면에서만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 흔한 방식은 훨씬 조용하다. 누군가를 “관리 대상”으로 만들고, 누군가의 돈을 “목적성 자금”이라는 이름으로 옮겨 쓰며, 아무도 명확히 책임지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명단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통제의 도구이고, 기금은 돈을 대상으로 한 통제의 도구다. 둘은 서로 다른 장치가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같은 문법의 두 얼굴이다.
권력이 무서운 이유는 폭력을 드러내서가 아니라, 예외를 행정 언어로 번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단과 기금은 왜 늘 함께 움직이는가
명단은 단지 이름의 나열이 아니다. 명단은 누가 안에 있고 누가 밖에 있는지를 결정하는 장치다. 체포 명단이든, 관리 명단이든, 지원 우선순위 명단이든 본질은 같다. 사람을 고유한 존재가 아니라 분류 가능한 항목으로 바꾼다. 이렇게 분류된 순간, 인간은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처리의 대상이 된다.
기금도 마찬가지다. 기금은 원래 특정 목적을 위해 모인 돈이다. 그런데 목적이 흐려지면 그 돈은 언제든 다른 실험의 재료가 된다. 예를 들어 생활안정자금이 본래 예술인의 생계 보호를 위해 존재한다면, 그것은 보험에 가깝다. 하지만 그 돈을 별도 제도 설계의 재원으로 쓰기 시작하면, 기금은 복지가 아니라 정책 모험의 담보가 된다. 보호를 위해 모은 자원이 오히려 통치 기술의 연료가 되는 셈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단순하다. 명단은 사람을 객관화하고, 기금은 돈을 유동화한다. 둘 다 “필요하다”, “효율적이다”, “관리상 불가피하다”는 말로 정당화되기 쉽다. 그러나 그 말들이 반복될수록 실제로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사라진다. 이 조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누가 실패했을 때 책임을 지는가.
행정은 원래 예측 가능성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명단과 기금이 정치적 목적에 접속하는 순간, 행정은 예측 가능성이 아니라 재량의 은폐 기술이 된다. 겉으로는 합리적인 서류와 절차가 늘어나지만,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린 사람이 사라진다. 그래서 폭주가 가능하다. 아무도 명확히 지시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고, 아무도 끝까지 책임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 없는 권력은 언제나 ‘제도’라는 얼굴을 쓴다
우리는 흔히 권력을 한 사람의 의지로 상상한다. 하지만 실제로 위험한 것은 개인의 악의만이 아니다. 더 위험한 것은 책임이 분산된 조직적 무책임이다. 이 구조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누가 했는지보다, 누가 했는지 끝내 증명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 된다.
정치인 체포 명단 논란에서 핵심은 단지 명단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 더 깊은 문제는, 특정 대상을 체포 가능한 존재로 상정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느냐는 점이다. 그것은 정치적 반대자를 경쟁자로 보지 않고, 제거 가능한 객체로 보는 시선이다. 민주주의는 이 지점에서 시험받는다. 반대자를 적으로 상상하는 순간, 제도는 규칙의 집합이 아니라 배제의 도구가 된다.
예술인공제회 논란에서도 핵심은 공제회라는 형식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생활안정자금과 복권기금 같은 공적 자원이, 정작 가장 취약한 사람을 직접 돕는 방식이 아니라 또 다른 관료적 구조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의심이다. 여기서 제도는 보호 장치가 아니라 자기증식하는 조직의 명분이 된다. 쉽게 말해, 사람을 위해 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을 다루는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 사람이 동원된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무엇이 남는가. 정책은 남지만 책임은 사라진다. 제도는 남지만 신뢰는 사라진다. 문서는 남지만 정당성은 사라진다. 이것이야말로 현대적 권력의 가장 교활한 형태다. 폭력이나 낭비가 드러나도, 그 원인은 언제나 “시스템의 문제”로 환원된다. 그런데 바로 그 시스템이 누군가의 선택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흐려진다.
책임이 보이지 않을수록 권력은 더 세련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위험하다.
국가가 가장 자주 저지르는 착각: 사람을 관리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정치와 행정이 자주 빠지는 함정이 있다. 그것은 문제를 사람의 삶에서 찾지 않고 사람을 분류하는 방식에서 찾으려는 습관이다. 예술인의 불안정한 삶이 문제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소득 안정과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행정은 자주 그보다 덜 고통스럽고 더 관리하기 쉬운 해법을 찾는다. 새 제도, 새 기구, 새 명칭이다.
이때 생기는 착시가 있다.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실제 해결은 전혀 다른 차원에 있다. 예를 들어 빗물이 새는 집에서 중요한 것은 새 통을 더 많이 두는 것이 아니라 지붕을 고치는 일이다. 그런데 통을 늘리는 작업이 지붕 수리보다 더 화려하고, 더 많은 보고서를 낳고, 더 많은 예산을 정당화한다면, 조직은 통을 늘리는 쪽으로 기운다. 그 결과는 늘 비슷하다. 누수는 계속되고, 통만 늘어난다.
정치적 체포 명단 역시 같은 함정을 보여준다. 문제를 설득이나 타협의 실패로 보지 않고, 명단 작성으로 해결하려는 순간 정치는 사라진다. 정치의 본질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을 제도화하고 공존의 조건을 만드는 데 있다. 명단은 그 반대다. 명단은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 상대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지름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공통된 사고방식을 본다. 관리 가능한 대상만 남기고, 인간적 복잡성은 제거하려는 욕망이다. 예술인은 직업인으로서의 불안정성, 창작의 변동성, 소득의 비정형성을 가진 존재다. 정치인은 의견이 다른 시민과 경쟁하는 존재다. 그런데 권력이 이 복잡성을 견디지 못하면, 예술인은 제도 설계의 재료가 되고 정치인은 제거 대상이 된다. 결국 문제는 동일하다. 국가가 사람을 이해하는 대신, 사람을 단순화하려 든다는 점이다.
진짜 쟁점은 예산이 아니라, 국가가 누구의 삶을 담보로 삼는가이다
예산 논쟁은 흔히 숫자의 싸움처럼 보인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이것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의 위험을 사회가 떠안을 것인가의 문제다. 복지재원은 원래 취약한 사람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한 사회적 보험이다. 그런데 그 재원이 새로운 조직이나 제도 실험의 기반이 되면, 위험의 부담이 뒤집힌다. 취약한 사람이 보호받는 대신, 취약한 사람이 정책 실험의 비용을 감당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담보화다. 은행은 대출을 위해 담보를 요구한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직접 책임지기보다 누군가의 삶, 누군가의 미래, 누군가의 이름을 담보로 삼는 것이다. 정치적 명단은 반대자를 담보로 삼는 행위에 가깝다. 공제회나 특수직역 제도의 남용은 특정 집단의 생활 불안을 담보로 삼는 행위에 가깝다.
이 관점에서 보면, 관료제는 본래 중립적이지 않다. 관료제는 늘 두 얼굴을 갖는다. 하나는 규칙을 통해 약자를 보호하는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규칙을 통해 책임을 미루는 얼굴이다. 어떤 얼굴이 나타나는지는 결국 제도보다 정치적 감시와 공론의 밀도에 달려 있다. 감시가 느슨해지면 행정은 복지를 설계하는 대신 복지를 포획한다. 공론이 약해지면 권력은 사람을 지우는 명단을 만들고도 그것을 “절차”라고 부른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판단 기준의 전환이다. 우리는 어떤 정책이 좋은지 물을 때 다음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이 정책은 누구의 위험을 줄이는가. 누구의 책임을 늘리는가. 누가 결정하고, 누가 비용을 치르며, 누가 실패했을 때 설명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정책은, 설령 언어가 아무리 세련돼 보여도 위험하다. 좋은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는 공공성을 만들 수 없다. 공공성은 이름이 아니라 책임의 구조에서 나온다.
Key Takea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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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단과 기금은 권력의 두 가지 기본 도구다. 하나는 사람을 분류하고, 하나는 자원을 재배치한다. 둘 다 책임이 흐려질 때 위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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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책임의 위치다. 누가 결정했고, 누가 감시하며, 누가 실패를 감당하는지 분명하지 않다면 그 제도는 쉽게 권력의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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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재원은 정책 실험의 재료가 아니라 보호의 최후선이어야 한다. 취약한 사람의 삶을 담보로 행정적 혁신을 추진하는 순간, 공공성은 훼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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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자를 명단화하는 사고는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정치적 갈등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조정의 대상이다. 상대를 적으로 바꾸는 순간 제도는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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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책을 가르는 핵심 질문은 세 가지다. 누구를 보호하는가. 누구에게 비용을 전가하는가. 누가 책임지는가.
제도는 사람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사람을 제도에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가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은 노골적인 폭력보다, 보호와 효율의 언어로 포장된 책임 회피다. 체포 명단 논란은 권력이 반대자를 어떻게 객체화하는지 보여주고, 예술인공제회 논란은 행정이 취약한 사람의 자원을 어떻게 전유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둘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사람을 먼저 보지 않고, 구조를 먼저 본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구조는 중립적 구조가 아니라, 권력이 숨 쉬기 쉬운 구조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성숙은 단순히 좋은 제도를 더 많이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사람을 숫자와 명단과 예산 항목으로 바꾸려는 유혹을 얼마나 강하게 거부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행정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면, 제도는 늘 사람의 삶을 덜 불안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반대로 제도가 자기 보존을 위해 사람을 끌어다 쓰기 시작하면, 그것은 이미 공공이 아니다.
결국 정치는 언제나 같은 시험을 받는다. 사람을 지킬 것인가, 사람을 관리할 것인가. 반대자를 시민으로 볼 것인가, 제거 가능한 대상으로 볼 것인가. 예산을 보호의 수단으로 쓸 것인가, 통치의 담보로 삼을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체제는 언젠가 반드시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명단을 만들고, 기금을 끌어다 쓰고,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다고 말하게 된다.
그 순간 우리가 잃는 것은 단지 돈이나 절차가 아니다. 국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감각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질 때, 제도는 더 이상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이름, 숫자, 예산 항목으로 바꾸는 가장 정교한 장치가 된다.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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