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막는 것은 예산 부족이 아니라 연결되지 않은 의사결정이다
Hatched by a010장인영
Aug 0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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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이 미래를 차지하지 못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무엇일까. 돈이 부족해서일까, 인구가 줄어서일까. 어쩌면 더 치명적인 이유는 미래를 말하는 사람들과 현재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일지 모른다.
하동에서 벌어진 301억 원 규모의 예산 삭감 논란은 겉으로 보면 집행부와 군의회의 정치적 충돌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지방자치가 반복해서 마주하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들어 있다. 지역의 미래를 만드는 사업은 누구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가. 연결과 혁신을 말하는 행정은 어떻게 시민의 신뢰를 얻는가. 그리고 예산을 삭감하는 견제는 언제 민주적 통제가 되고, 언제 공동체의 미래를 멈추게 하는가.
이 질문을 제대로 다루려면 예산을 단순한 돈의 목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예산은 공동체가 어떤 미래를 현실로 만들겠다고 서로 약속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301억 원의 삭감은 숫자의 축소만이 아니다. 그것은 약속의 재검토이며, 그 약속을 누가 만들고 누가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분쟁이다.
미래는 사업명이 아니라 연결의 품질에서 시작된다
지역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흔히 대형 시설, 산업단지, 관광 개발, 발전소 같은 사업을 떠올린다. 실제로 양수발전소 유치와 같은 프로젝트는 지역에 투자와 일자리를 가져올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하지만 시설이 들어온다고 자동으로 미래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래는 시설과 주민, 예산과 성과, 행정과 의회가 얼마나 촘촘히 연결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양수발전소를 예로 들어 보자. 발전소는 전력을 저장하고 공급하는 기술적 장치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그것은 토지 이용, 환경 보전, 세수, 고용, 교통, 생활 기반 시설, 장기 관리 책임이 얽힌 복합적인 계약이다. 주민에게는 발전소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 바뀌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유치 동의안의 통과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누가 어떤 이익을 얻는가. 비용과 위험은 누구에게 집중되는가. 10년 뒤 사업의 성과를 어떤 지표로 판단할 것인가. 사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누가 수정하거나 중단할 권한을 갖는가.
이 질문들이 공개적으로 다뤄지지 않으면, 연결을 약속하는 사업은 오히려 단절을 낳는다. 주민은 개발의 대상이 되고, 의회는 발목을 잡는 세력이 되며, 행정은 설명할 필요가 없는 전문가 집단처럼 행동하게 된다. 그 순간 사업의 물리적 규모가 아무리 커도 사회적 기반은 약해진다.
지역의 미래를 점유한다는 말은 땅을 먼저 차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가 미래의 설계 과정에 참여할 자리를 확보한다는 뜻이다.
연결은 구호가 아니라 설계 원리다. 고령자 복지주택은 주거 사업이면서 의료, 돌봄, 교통, 공동체 관계의 사업이다. 공설시장 재개발은 건축 사업이면서 상인의 생계, 소비자의 이동, 지역 상권의 정체성을 다루는 사업이다. 이런 사업을 한 부서의 성과나 한 임기의 치적으로만 관리하면, 사업은 쪼개지고 책임도 쪼개진다. 반대로 주민의 실제 삶을 중심에 놓으면 여러 사업을 하나의 생활 체계로 연결할 수 있다.
301억 원은 숫자가 아니라 신뢰의 손익계산서다
301억 원, 133개 단위 사업, 일반회계의 약 5퍼센트라는 숫자는 사태의 규모를 보여 준다.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갈등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다. 집행부는 고령자 복지주택 53억 원과 공설시장 재개발 30억 원 등이 군민 생활과 직결된다고 본다. 의회는 사업의 시급성, 실효성, 절차와 소통의 부족을 문제 삼는다. 양쪽 주장은 서로 다른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의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집행부의 기준은 실행 가능성에 가깝다. 이미 계획된 사업을 중단하면 주민에게 피해가 발생하고, 지역 건설 경기와 행정의 연속성이 흔들린다는 판단이다. 의회의 기준은 정당성과 검증에 가깝다. 충분한 검토 없이 추진되는 사업은 예산을 소진할 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선택지를 줄인다는 우려다.
두 기준 모두 필요하다. 실행만 강조하면 행정은 속도는 빠르지만 수정할 수 없는 기계가 된다. 검증만 강조하면 의회는 오류를 줄일 수 있지만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기관이 된다. 문제는 어느 한쪽이 옳으냐가 아니라, 실행과 검증을 순차적인 싸움으로 만들지 않고 동시에 작동시키는 제도가 있느냐에 있다.
예산 갈등이 파괴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사업의 품질과 정치적 신뢰가 한꺼번에 평가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원 건립 논란, 성과 시상금 조례를 둘러싼 소송, 군수 관련 의혹과 맞고소가 이어진 상황에서는 개별 사업의 자료도 정치적 의심 속에서 읽힌다. 같은 예산서라도 신뢰가 높은 조직에서는 계획으로 보이고, 신뢰가 낮은 조직에서는 특혜나 무능의 증거로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신뢰 할인율이다. 투자자는 불확실성이 클수록 같은 수익을 약속하는 사업에도 더 높은 위험 비용을 요구한다. 지역 행정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소통 실패와 절차 논란이 누적되면 주민과 의회는 사업의 장래 편익을 할인해서 계산한다. 100의 편익을 제시해도 실제로는 60이나 70으로 받아들인다. 이때 행정이 사업의 장점을 더 크게 홍보할수록 불신은 오히려 커질 수 있다. 필요한 것은 홍보의 강도가 아니라 검증의 구조다.
좋은 견제는 멈추게 하는 힘이 아니라 고치게 하는 힘이다
의회의 예산 삭감 권한은 지방자치의 핵심 장치다. 집행부가 세운 계획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의회라면 주민을 대신해 우선순위를 판단할 이유가 없다. 사업의 시급성이 낮거나 성과가 불분명하거나 절차가 충분하지 않다면 삭감과 보류는 정당한 통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삭감이 같은 것은 아니다. 수정 가능한 삭감과 관계를 끊는 삭감을 구분해야 한다. 수정 가능한 삭감은 조건을 붙인다. 타당성 자료를 보완하라, 주민 설명회를 열라, 단계별 성과 지표를 제시하라, 일정 금액 이상 집행하기 전에 중간 평가를 받으라는 식이다. 반면 관계를 끊는 삭감은 사업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복구 조건과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 경우 견제는 개선 장치가 아니라 정치적 거부권으로 보이게 된다.
예산 심의는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비슷하다. 브레이크의 존재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 필요하지만, 브레이크를 밟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좋은 브레이크는 운전자가 방향을 바꾸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돕는다. 계속 밟힌 브레이크는 자동차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반대로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는 빠르게 달릴 수 있어도 사고가 나면 회복하기 어렵다.
이 비유를 행정에 적용하면 세 가지 원칙이 나온다.
첫째, 삭감 사유는 사업명보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효과가 부족하다”가 아니라 어느 가정이 틀렸고 어떤 자료가 부족한지 밝혀야 한다.
둘째, 삭감은 재심의 경로를 포함해야 한다. 보완해야 할 자료와 다시 논의할 시점을 정하지 않으면, 예산 삭감은 영구적인 정치 판정으로 남는다.
셋째, 주민의 체감 피해와 행정의 절차적 문제를 분리해서 평가해야 한다. 사업에 절차 문제가 있다고 해서 주민에게 필요한 서비스까지 설명 없이 중단할 수는 없다. 반대로 주민에게 필요한 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절차와 성과 검증을 면제할 수도 없다.
지역을 멈추게 하는 것은 갈등이 아니라 불투명한 갈등이다
갈등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충돌하면, 숨겨져 있던 비용과 위험이 드러날 수 있다. 문제는 갈등이 어떤 정보를 생산하느냐에 있다. 공개된 갈등은 판단의 질을 높이지만, 인신공격과 의혹만 반복되는 갈등은 공동체의 판단 능력을 소진시킨다.
여기서 지방정부가 도입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치가 사업의 가역성 설계다. 모든 사업을 처음부터 완성형으로 추진하지 말고, 되돌릴 수 있는 단계로 나누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공설시장 재개발이라면 전체 철거와 대규모 공사를 한 번에 결정하기 전에 상인 이동 계획, 임시 매출 보전, 소규모 공간 개선, 이용자 변화 측정을 순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고령자 복지주택도 건설비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입주 수요, 운영비, 돌봄 인력, 의료 연계의 시범 모델을 먼저 검증할 수 있다.
가역성은 우유부단함이 아니다. 오히려 큰 결정을 더 쉽게 만드는 방법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확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의회는 최악의 위험을 막기 위해 전체를 거부하고, 집행부는 추진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 자료를 낙관적으로 제시하게 된다. 작은 단계와 명확한 중단 기준이 있으면 양쪽 모두 위험을 통제하면서 시작할 수 있다.
또 하나 필요한 것은 사업의 연결 지도다. 모든 주요 사업에 대해 다음 항목을 한 장의 문서로 공개하는 것이다.
- 이 사업이 해결하려는 주민의 문제
- 직접 영향을 받는 집단과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집단
- 다른 사업과 공유하는 예산, 인력, 기반 시설
- 예상 편익과 예상 비용의 분포
- 1년, 3년, 5년 뒤 확인할 성과 지표
- 실패했을 때 수정하거나 중단하는 조건
이 지도는 행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장식이 아니다. 사업을 부서별 목록에서 주민의 삶에 연결된 체계로 바꾸는 최소한의 번역 장치다. 지역 주민은 “관광진흥과 36억 원”이라는 항목보다, 그 돈이 누구의 이동 시간을 줄이고 어떤 상점의 매출을 늘리며 어떤 환경 비용을 만들지 알고 싶어 한다.
미래를 만드는 행정은 합의보다 학습을 관리한다
많은 공공기관은 갈등이 없는 상태를 합의라고 부른다. 하지만 진정한 합의는 모두가 처음부터 같은 생각을 갖는 상태가 아니다. 서로 다른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할 방법에 동의하는 상태에 가깝다.
집행부는 사업이 지역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의회는 비용에 비해 효과가 낮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주민은 생활 불편이 커질 것이라는 가설을 가질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선언적 승리가 아니라, 세 가설을 비교할 수 있는 공개 실험이다.
이를 위해 예산 심의를 학습 계약으로 바꿀 수 있다. 학습 계약에는 네 가지가 들어간다.
첫째, 사업이 성공하려면 무엇이 참이어야 하는지 적는다. 예를 들어 일정한 입주 수요가 있어야 하고, 운영 인력이 확보되어야 하며, 주민의 접근성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식이다.
둘째, 그 사실을 언제 어떻게 확인할지 정한다. 단순히 사업비를 집행했는지 보지 말고, 대기자 수, 이용률, 유지 비용, 주민 만족도, 주변 상권 변화처럼 결과에 가까운 지표를 사용해야 한다.
셋째, 가설이 틀렸을 때 누가 어떤 절차로 수정할지 미리 정한다. 실패를 인정하는 절차가 없는 사업은 실패를 숨기는 사업이 되기 쉽다.
넷째, 의회와 주민이 중간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한다. 사후 감사만으로는 이미 발생한 비용을 되돌리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집행 중에 방향을 바꾸는 능력이다.
이런 구조가 마련되면 예산 삭감도 다른 의미를 갖는다. 사업 전체를 없애는 대신, 검증되지 않은 부분을 줄이고 검증 가능한 부분을 남길 수 있다. 집행부 역시 의회의 문제 제기를 방해로만 보지 않고 사업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 외부 검증으로 활용할 수 있다.
Key Takeaways
지방정부, 의회, 시민단체, 주민 모임 등 지역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다음 행동부터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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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업을 주민의 문제로 번역하라. 부서명과 예산액을 제시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누구의 어떤 불편을 줄이는지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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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감 사유를 조건으로 바꾸라. “필요 없다”는 결론 대신 “이 자료와 절차가 충족되면 다시 심의한다”는 재검토 기준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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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단계적으로 설계하라. 처음부터 전체 예산을 확정하지 말고, 시범 사업과 중간 평가를 통해 다음 투자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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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와 신뢰를 따로 관리하라. 사업의 편익이 크더라도 절차가 불투명하면 신뢰 비용이 커진다. 설명회, 자료 공개, 이해충돌 검토를 사업 성과의 일부로 취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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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목표를 승리가 아니라 정보 생산으로 설정하라. 상대를 침묵시키는 질문보다 사업의 가정, 위험, 대안을 드러내는 질문을 선택한다.
하동의 예산 충돌에서 중요한 것은 301억 원이 최종적으로 어디에 배분되느냐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결정을 통해 지역사회가 어떤 의사결정 능력을 갖추게 되느냐이다. 고령자 복지주택이 지어지더라도 주민이 행정을 믿지 못하면 다음 사업은 더 어려워진다. 반대로 한 사업이 보류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투명한 기준과 재검토의 문화를 만들면 다음 결정은 더 빨라지고 정교해질 수 있다.
지역의 미래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크기로 측정되지 않는다. 갈등이 생겼을 때 공동체가 얼마나 빨리 사실을 분리하고, 위험을 나누고, 틀린 가정을 수정할 수 있는가로 측정된다. 연결된 미래란 모두가 같은 의견을 갖는 미래가 아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단절되지 않은 채 다시 협의할 수 있는 미래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결되고, 새로운 미래를 점유한다”는 말은 홍보 문구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행정이 주민에게 던져야 할 약속이자 시험 문제다. 무엇을 연결할 것인가. 누가 그 연결에서 배제되는가. 그리고 우리가 틀렸을 때 어떻게 고칠 것인가. 이 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예산은 비로소 소모되는 돈이 아니라 함께 학습하는 지역의 기억이 된다.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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