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미래를 잠그는 두 개의 문: 창작권 독점과 지역서점의 소멸

porcorosso

Hatched by porcorosso

Aug 17, 2026

7 min read

88%

0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결정하지 못한다면, 그 작품은 정말 창작자의 것일까? 반대로 독자가 어떤 책을 어디에서 만날지 선택할 수 없다면, 우리는 정말 풍요로운 문화 시장에 살고 있는 것일까?

웹툰의 2차적 저작권과 지역서점의 납품 문제는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사안이다. 하나는 계약서 속 권리 배분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도서 유통과 지역 상권의 문제다. 그러나 두 문제의 중심에는 같은 질문이 놓여 있다. 문화의 미래를 누가 선택하는가?

한쪽에서는 창작자가 만든 이야기가 영상, 게임, 출판, 공연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특정 기업이 먼저 차지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독자가 만날 책의 경로가 대형 유통망에 집중된다. 전자는 창작의 다음 단계를 잠그고, 후자는 독서의 다음 장소를 줄인다. 결과적으로 문화는 생산 단계와 유통 단계 모두에서 선택지를 잃는다.

이 글의 핵심 주장은 간단하다. 문화 생태계의 건강성은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창작자와 독자에게 얼마나 많은 다음 선택지를 남겨 두느냐로 측정해야 한다.

문화 시장의 진짜 자원은 콘텐츠가 아니라 선택지다

문화 상품은 일반적인 소비재와 다르다. 빵은 한 번 먹으면 사라지지만, 이야기는 다른 형태로 계속 살아 움직인다. 웹툰 한 편은 드라마가 될 수 있고, 소설은 오디오북과 연극이 될 수 있으며, 한 권의 책은 지역 공동체에서 토론과 교육의 매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창작물의 가치는 최초 판매액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형태로 전환될 수 있는지, 누구에게 도달할 수 있는지, 어떤 맥락에서 다시 해석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를 문화적 선택지의 총량이라고 부를 수 있다.

어떤 계약이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회사에 독점적으로 우선 부여한다면, 당장 작품이 활용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창작자가 미래의 협상력을 잃을 가능성이 생긴다. 회사가 직접 드라마화를 추진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업자가 접근하는 길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권리를 넘겨받은 주체가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아도, 잠재적 활용 가능성은 사라진다.

이것은 빈 상점에 비유할 수 있다. 건물주가 모든 임대권을 한 사업자에게 장기간 독점으로 넘겼는데, 그 사업자가 매장을 열지 않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겉으로는 상점가가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그 자리를 이용할 수 없다. 사용되지 않는 독점권은 단순한 권리 보유가 아니라, 다른 선택을 막는 공간의 봉쇄다.

조사에서 2차적 저작물 작성권에 회사의 독점적 우선 사업권을 부여한 조항이 54퍼센트에 달하고, 회사에 해당 권리를 양도하는 경우가 23퍼센트, 권리의 구체적 범위조차 규정하지 않은 경우가 20퍼센트로 나타났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예외적인 실수가 아님을 보여준다. 계약서가 창작물의 미래를 설계하는 문서가 아니라, 창작자가 미래를 알 수 없게 만드는 문서로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역서점의 문제도 같은 구조를 지닌다. 공공기관과 국공립도서관이 필요한 책을 대형 인터넷서점 중심으로 납품받으면, 구매 과정은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책이 지역 안에서 발견되고 추천되고 대화되는 기회는 줄어든다. 지역서점이 사라지면 독자는 단지 한 곳의 판매점을 잃는 것이 아니다. 책을 만나는 방식의 다양성, 지역의 큐레이션, 우연한 발견의 가능성을 함께 잃는다.

독점은 효율을 주지만, 미래를 가난하게 만든다

독점이 늘 나쁜 것은 아니다. 한 기업이 복잡한 영상 제작과 마케팅에 투자하려면 일정한 권리 안정성이 필요하다. 대형 유통망이 빠른 배송과 낮은 비용을 제공하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현재의 효율을 위해 미래의 선택지를 지나치게 희생할 때 발생한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 집중과 봉쇄는 다르다. 자원이 한곳에 모이는 집중은 규모의 경제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한 주체가 다른 주체의 진입을 막는 봉쇄는 생태계의 회복력을 떨어뜨린다. 권리의 독점, 납품의 집중, 검색 결과의 편중은 모두 처음에는 효율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문화의 다양성을 약화시킨다.

이를 문화 생태계의 보험 문제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이 하나의 회사와만 연결되어 있다면, 그 회사의 전략 변화는 곧 작품의 운명을 결정한다. 한 지역의 도서 수요가 하나의 대형 유통망에만 의존한다면, 그 유통망의 가격 정책이나 공급 변화는 지역의 독서 환경 전체를 흔든다.

선택지가 여러 개 있다는 것은 비효율처럼 보일 수 있다. 작은 서점이 여러 곳 존재하면 주문과 관리가 복잡해지고, 여러 사업자가 2차적 저작권을 두고 협상하면 의사결정이 느려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중복은 낭비가 아니라 문화적 회복력을 위한 여유 용량이다. 한 경로가 막혔을 때 다른 경로가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숲이 나무 한 종류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관리하기는 쉽다. 하지만 특정 병충해가 퍼지는 순간 숲 전체가 위험해진다. 다양한 나무가 섞인 숲은 성장 속도가 조금 느릴 수 있어도 한 종의 실패가 전체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는다. 문화 시장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계약 주체와 유통 경로는 비용을 늘릴 수 있지만, 동시에 실패의 전염을 막는다.

좋은 문화 정책은 가장 빠른 경로 하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경로가 막혀도 창작과 독서가 계속될 수 있도록 여러 경로를 남기는 일이다.

권리와 유통은 따로 관리할 수 없다

창작자의 권리 보호와 지역서점 지원을 서로 다른 정책 분야로 나누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둘은 문화 가치가 이동하는 두 단계이기 때문이다. 첫 단계는 창작자가 작품의 미래에 관해 협상할 수 있는가이다. 두 번째 단계는 그 작품이 독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에서 여러 만남의 장소를 가질 수 있는가이다.

첫 단계에서 선택지가 사라지면 작품은 창작자에게서 분리된 채 특정 사업자의 자산이 된다. 두 번째 단계에서 선택지가 사라지면 작품은 독자에게 도달하더라도 획일적인 추천과 판매 논리 안에 갇힌다. 하나는 창작의 주권을 약화시키고, 다른 하나는 발견의 주권을 약화시킨다.

여기서 주권이라는 말은 모든 결정을 개인이 독점한다는 뜻이 아니다.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이 어떤 매체로 확장될지에 대해 의미 있는 협상력을 갖고, 독자가 어떤 책을 어떤 공간에서 만날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화의 민주성은 모두가 같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콘텐츠와 경로를 선택할 수 있는 조건에 있다.

예를 들어 한 웹툰이 영상화될 때 원작자가 계약 이후에도 일정한 승인권이나 협의권을 갖고 있다면, 각색 과정에서 원작의 핵심 정체성이 어떻게 다뤄질지 논의할 수 있다. 반면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의 범위와 기간, 매체가 불분명한 채 포괄적으로 양도되면,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이 어떤 형태로 변형되는지 알기 어렵다.

책의 경우도 비슷하다. 대형 인터넷서점은 방대한 재고와 빠른 검색을 제공하지만, 지역서점은 지역 독자의 취향과 학교, 도서관, 공동체의 필요를 해석할 수 있다. 같은 책을 팔더라도 유통 주체가 달라지면 책의 의미와 발견 방식이 달라진다. 유통은 단순한 운송이 아니라 문화적 해석과 연결의 행위다.

그러므로 정책의 목표는 단순히 불공정 계약을 줄이거나 지역서점의 매출을 높이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목표는 문화 가치가 한 주체에게 고정되지 않고, 창작자와 중간 유통자와 독자 사이를 계속 이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선택지를 지키는 계약과 조달의 설계

그렇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 첫째, 계약은 권리의 존재만이 아니라 권리의 범위, 기간, 매체, 사용 조건, 재협상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 영화화 권리와 게임화 권리는 사업 모델과 제작 방식이 다르다. 하나의 포괄 조항으로 묶을수록 창작자가 이해하고 협상하기 어려워진다.

둘째, 독점권에는 사용 의무와 시간 제한이 필요하다. 특정 회사에 우선 사업권을 주더라도 일정 기간 안에 사업을 추진하지 않으면 권리가 창작자에게 돌아오거나 다른 사업자와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 권리를 가진 주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에도 창작자가 영원히 기다려야 한다면, 그것은 투자 보호라기보다 미래의 봉쇄다.

셋째, 권리 양도와 수익 배분을 별개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높은 선급금이나 일정한 수익 배분이 있다고 해서 모든 미래의 사용 권한을 무제한으로 넘기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돈의 액수만이 아니라 창작자가 어떤 결정을 영구적으로 포기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가이다.

넷째, 공공 조달은 최저 가격 경쟁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지역서점 우선 납품 제도를 강화하자는 요구가 63.1퍼센트로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은 지역서점이 단순히 판매 공간이 아니라 공공 독서 인프라로 기능한다는 인식과 연결된다. 공공기관의 도서 구매는 한 번의 배송을 처리하는 일이 아니라, 지역 안에 문화적 접점을 유지하는 투자로 설계되어야 한다.

다섯째, 지역서점 정책도 보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공동 주문 시스템, 공공 도서 큐레이션, 학교와의 독서 프로그램, 지역 작가와의 연계 등으로 작은 서점의 강점을 확장해야 한다. 대형 플랫폼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려 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대신 지역서점은 검색 알고리즘이 포착하기 어려운 맥락과 관계를 제공해야 한다.

이 모든 변화의 공통 원리는 가역성이다. 한 번의 계약이나 한 번의 조달 결정이 미래의 모든 선택을 닫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가역적인 시스템에서는 실패해도 돌아갈 길이 있다. 비가역적인 시스템에서는 작은 오판이 창작자의 경력과 지역의 문화 기반을 장기간 결정한다.

우리가 당장 점검할 수 있는 문화적 선택지

정책 담당자와 기업만 이 문제의 당사자는 아니다. 창작자, 독자, 교육기관, 공공기관 모두가 선택지를 늘리거나 줄이는 결정에 참여한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실제 행동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Key Takeaways

  • 계약서를 읽을 때 권리의 이름보다 범위를 확인하라. 2차적 저작물의 대상 매체, 기간, 지역, 독점 여부, 사용하지 않을 때의 반환 조건이 명시되어 있는지 살펴야 한다.
  • 독점권에는 반드시 만료 조건을 요구하라. 사업 추진 기한과 미사용 시 재협상 또는 권리 회복 조항은 창작자의 미래 선택지를 지키는 핵심 장치다.
  • 공공 도서 구매에서는 가격 외의 효과를 계산하라. 지역서점의 공급 능력뿐 아니라 지역 독서 모임, 추천, 교육 프로그램과 연결되는 가치까지 평가해야 한다.
  • 독자는 구매 경로를 한곳에만 의존하지 말라. 지역서점, 독립 출판 행사, 도서관의 큐레이션을 이용하는 것은 개인의 소비 취향을 넘어 문화적 다양성에 참여하는 행동이다.
  • 모든 문화 사업에서 다음 선택지를 질문하라. 이 결정은 누군가의 협상력을 줄이는가, 다른 경로의 진입을 막는가, 실패했을 때 되돌릴 수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문화의 위기는 언제나 콘텐츠 부족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콘텐츠는 넘치는데, 그 콘텐츠가 다른 형태로 성장할 권리와 독자에게 도달할 다양한 경로가 사라질 때 위기가 시작된다. 창작자는 많지만 자신의 작품이 어디로 갈지 결정할 수 없고, 책은 많지만 독자가 우연히 발견할 장소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우리는 흔히 문화의 경쟁력을 새로운 작품의 수, 플랫폼의 규모, 배송 속도, 매출액으로 측정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지표는 따로 있다. 누가 아직 협상할 수 있는가, 어떤 경로가 아직 열려 있는가, 실패한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가다.

창작자의 권리를 지키는 일과 지역서점을 살리는 일은 결국 같은 문화 철학을 요구한다. 문화는 한 번 만들어져 한 번 팔리는 물건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과 공간과 매체를 거치며 다시 살아나는 관계망이다. 그 관계망에서 특정 주체가 모든 다음 단계를 선점하면 문화는 효율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쉽게 늙고 취약해진다.

그러므로 좋은 문화 생태계는 가장 강한 승자를 만드는 시스템이 아니다. 아직 선택받지 못한 작품이 다시 기회를 얻고, 창작자가 계약 이후에도 발언권을 가지며,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책과 만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현재의 콘텐츠 목록이 아니다. 콘텐츠가 내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고,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며, 다른 공간에서 다시 의미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문화의 자유는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지가 계속 남아 있는 상태에서 시작된다.

Sources

← Back to Library

Hatch New Ideas with Glasp AI 🐣

Glasp AI allows you to hatch new ideas based on your curated content. Let's curate and create with Glasp AI :)

Start Hatch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