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으로 사람을 걸러내는 사회, 전문가 없이 정책을 정하는 사회
Hatched by porcorosso
Apr 2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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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짜 질문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는 종종 내용이 나빠서가 아니다. 더 자주 문제는 참여의 문턱이 잘못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제도는 너무 쉽게 특정 집단만 들어오게 만들고, 또 어떤 제도는 정작 가장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할 사람들을 밖에 세워둔다. 그렇다면 정말 민주적인 정책이란 무엇일까. 모두를 같은 방식으로 참여시키는 것일까, 아니면 가장 적합한 사람을 적절한 방식으로 참여시키는 것일까.
겉으로 보면 하나는 디지털 서비스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 영역의 정책 결정 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둘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구조가 드러난다. 누구를 안으로 들이고 누구를 밖에 둘 것인가라는 설계의 문제다. 오늘날 많은 정책은 중립적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특정 연령, 직업, 기술 수준, 사회적 자원을 가진 사람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다. 그 결과 제도는 모두를 위한 것처럼 보이면서 실제로는 일부만 편하게 쓸 수 있는 장치가 된다.
이 글의 핵심은 단순하다. 좋은 정책은 내용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참여의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디지털 접근성과 전문가 참여는 따로 떨어진 이슈가 아니라, 정책이 현실과 만나는 두 개의 출입문이다.
앱이 문이 되는 순간, 공공성은 사라진다
어떤 서비스가 앱 없이는 사실상 이용할 수 없다면, 그 순간 그것은 공공정책이라기보다 기술 필터가 된다. 겉으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실제로는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한 사람만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다. 20대와 40대가 압도적으로 가입하고 60대 비율이 극히 낮다는 사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설계가 누구를 기본 사용자로 상정했는지 보여주는 지도다.
이 문제를 흔히 세대 격차라고 부르지만, 사실 더 정확한 표현은 마찰의 불평등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앱 설치, 본인 인증, 알림 설정, 회원가입이 몇 분짜리 절차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 자체가 장벽이다. 메뉴를 읽는 방식, 비밀번호를 만드는 습관, 오류 메시지를 해석하는 능력,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주변 환경까지 모두 포함하면 격차는 단순히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친숙함은 개인 능력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의 집합이다.
예를 들어 보자. 버스 정류장에만 종이 시간표가 없고 앱으로만 도착 정보를 제공한다고 하자. 젊은 사람에게는 편리한 서비스다. 하지만 스마트폰 배터리가 다 떨어진 사람,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 데이터가 부족한 사람, 자녀가 설치해준 앱을 다시 열어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정보가 사라진 것과 같다. 서비스는 존재하지만 접근은 선택적이 된다. 공공정책이 이런 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면, 시민권은 권리라기보다 기술 숙련도의 결과처럼 보이게 된다.
공공 서비스가 앱으로만 제공되는 순간, 그것은 편의가 아니라 선별 장치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술을 거부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기술은 분명 행정을 더 빠르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기술이 대체재가 아니라 추가 경로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앱은 훌륭한 선택지일 수 있지만, 유일한 입구가 되는 순간 공공성은 무너진다.
왜 전문가를 부르지 않고 전문 문제를 결정하려 할까
반대편에는 또 다른 착시가 있다. 공공정책은 모두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언뜻 듣기엔 매우 민주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모든 사안을 같은 방식으로 합의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의료 인력 배치처럼 복잡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문제에서는, 비전문가의 광범위한 참여가 오히려 판단을 흐릴 수 있다.
의대 정원 같은 이슈는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니다. 장기적인 수련 체계, 지역 의료 수요, 진료 과목별 분포, 고령화 추세, 급여 구조, 의사 노동 강도, 응급 시스템의 병목까지 얽혀 있다. 이런 문제를 감정적 프레임이나 단기 인기만으로 결정하면, 결과는 대개 정책이 아니라 이벤트가 된다. 국민이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결정하는 것은 다르다.
그렇다고 전문가에게 모든 권한을 몰아주자는 뜻도 아니다. 전문가는 종종 자기 분야의 언어로 사회적 비용을 과소평가하거나, 집단 이익을 일반 이익처럼 포장할 수 있다. 의료계가 정책 논의에서 항상 공익을 대표한다고 가정하는 것도 순진하다. 전문성은 중립이 아니라 정보의 우선권일 뿐이며, 그 우선권이 자동으로 정당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래서 더 미묘해진다. 한쪽에는 비전문가가 너무 많이 개입해 전문 판단이 흐려지는 위험이 있고, 다른 쪽에는 전문가가 너무 폐쇄적으로 행동해 자기 분야를 사유화하는 위험이 있다. 결국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어떤 단계에서 어떤 형태로 참여해야 하는가다.
좋은 제도는 참여의 수준을 나눈다
우리는 종종 참여를 하나의 덩어리로 생각한다. 참여했거나, 참여하지 않았거나. 하지만 실제로는 참여에도 층위가 있다. 이걸 이해하면 디지털 접근성과 전문성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다. 좋은 제도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한 테이블에 앉히려 하지 않는다. 대신 역할을 분리하고, 경로를 설계하고, 최종 판단의 기준을 명확히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정책 설계는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 접근 단계: 누가 들어올 수 있는가
- 숙의 단계: 누가 어떤 정보를 바탕으로 의견을 낼 수 있는가
- 결정 단계: 최종 판단은 어떤 기준과 책임 구조로 이뤄지는가
앱 중심 서비스의 실패는 주로 첫 번째 단계에서 발생한다. 입구가 좁다. 반면 의대 정원 같은 정책은 세 번째 단계에서 문제가 생긴다. 판단권의 구조가 흐릿하거나, 전문가 의견과 공적 책임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하지만 둘 다 결국 같은 제도적 실수를 공유한다. 참여 구조를 설계하지 않은 채, 형식적 참여만 확보했다고 믿는 것이다.
이때 유용한 비유가 있다. 공항 보안 검색대를 생각해 보자. 모든 승객이 다 같은 방식으로 심사받지만, 이유는 단순한 평등이 아니다. 목적에 맞는 안전 확보다. 반대로 항공기 조종은 승객 투표로 정하지 않는다. 이것 역시 반민주적이어서가 아니라, 역할과 책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중요하냐가 아니라, 어떤 결정은 대중적 정당성이 더 중요하고, 어떤 결정은 전문적 정확성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 구분이 사라지면 두 가지 오류가 생긴다. 하나는 앱 없는 사람을 배제하는 기술적 배제다. 다른 하나는 전문 지식이 필요한 문제를 여론의 숫자로만 처리하는 인식적 배제다. 전자는 접근의 문제, 후자는 판단의 문제다. 하지만 둘은 모두 설계 실패라는 공통 원인을 가진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참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참여를 설계하는 방식이 너무 거칠어서 생긴다.
공정함은 같은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배려에서 나온다
많은 제도는 평등을 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모든 사람에게 앱을 쓰게 하면 공평하고, 모든 사람을 토론장에 불러내면 민주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진짜 공정함은 동일한 절차를 강요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서로 다른 능력과 역할에 맞게 문을 다르게 설계하는 것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복지 신청을 떠올려 보자. 젊고 디지털에 익숙한 사람은 앱 신청이 편하다. 하지만 고령자나 장애인에게는 전화, 창구, 방문 지원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이것은 비효율이 아니라 안전장치다. 마찬가지로 의료 인력 정책은 의사, 간호사, 병원 경영자, 환자단체, 보건경제학자, 지역 대표가 각기 다른 층위에서 참여해야 한다. 모두가 같은 표를 던지는 구조보다, 각자의 정보가 반영되는 구조가 더 정확하다.
여기서 핵심은 동등한 발언권과 동등한 결정권을 구분하는 일이다. 모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지만, 모든 목소리가 같은 방식으로 반영될 필요는 없다. 환자는 경험을 가장 잘 알고, 의사는 임상 현실을 가장 잘 알며, 행정은 자원의 제약을 가장 잘 안다. 이 셋은 서로 대체할 수 없다. 공정한 제도는 이 차이를 평준화하지 않고, 오히려 가시화한다.
이 관점에서 앱 중심 행정과 전문가 배제형 정책은 하나의 잘못된 철학을 공유한다. 둘 다 복잡성을 단순한 형식으로 덮는다. 전자는 모든 시민을 하나의 인터페이스에 넣으려 하고, 후자는 모든 문제를 하나의 여론 프레임에 넣으려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마다 필요한 경로가 다르고, 사안마다 필요한 판단의 종류가 다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참여의 단일창구’가 아니다
정책의 미래는 단순히 더 많은 앱, 더 많은 공청회, 더 많은 회의가 아니다. 미래의 과제는 다중 경로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시민이 디지털로도, 전화로도, 오프라인으로도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전문가가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발언하되, 그 지식이 폐쇄적 기득권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검증과 투명성이 따라야 한다.
이때 좋은 질문은 이것이다. 이 정책은 누구에게 쉬운가가 아니라, 누구에게만 쉬운가. 그리고 이 결정은 누구에게 열려 있는가가 아니라, 누구에게만 열려 있는가. 이 질문은 편의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점검하게 만든다. 어떤 제도가 특정 집단에게만 지나치게 쉬우면, 다른 집단에게는 구조적 불이익이 쌓인다.
실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중요하다. 첫째, 중요한 공공서비스는 반드시 비디지털 대안을 남겨야 한다. 둘째, 복잡한 전문 정책은 이해관계자 전원을 같은 비중으로 한자리에 모으기보다, 정보의 종류에 따라 참여 구조를 달리해야 한다. 셋째, 최종 결정권자는 의견의 크기가 아니라 증거의 질과 장기적 파급효과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런 구조는 느려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느림은 종종 더 깊은 정당성을 낳는다. 빠르게 만든 제도가 나중에 더 큰 배제와 갈등을 부르면, 결국 그 비용을 치르는 것은 시민이다. 정책은 단기 속도보다 장기 신뢰를 우선해야 한다. 신뢰는 선언으로 생기지 않는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필요한 사람은 더 정확하게 참여할 수 있다는 경험에서 생긴다.
Key Takeaways
- 공공정책의 핵심은 내용만이 아니라 출입문 설계다. 누구나 보게 만드는 것과 누구나 실제로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다르다.
- 디지털 서비스는 기본 경로가 아니라 추가 경로여야 한다. 앱이 유일한 입구가 되면 공공성은 기술 숙련도에 종속된다.
- 전문 문제는 모두의 의견이 아니라, 적절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참여는 평면이 아니라 층위로 설계해야 한다.
- 동등한 발언권과 동등한 결정권은 다르다. 모든 목소리를 듣되, 반영 방식은 사안에 따라 달라야 한다.
- 좋은 제도는 단일창구가 아니라 다중 경로를 만든다. 편의와 정당성은 충돌하지 않지만, 둘 다 설계되어야 함께 얻을 수 있다.
결론: 민주주의는 모두를 한 문으로 들이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민주주의를 이렇게 오해한다. 더 많은 사람을 같은 방식으로 참여시키면 더 좋은 제도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일 때가 많다. 어떤 사람에게는 앱이 문이 되고, 어떤 문제에서는 비전문가의 평균적 직관이 판단을 흐린다. 문제는 참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참여의 형태가 무심하게 설계된 것이다.
그래서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을 시스템 안에 넣는 데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마다 다른 능력과 역할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시스템 자체를 다시 설계할 것인가. 공공성은 모두를 같은 통로로 몰아넣을 때가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조건에 맞는 통로를 가질 때 강화된다. 전문성도 마찬가지다. 전문가의 권위를 맹종할 때가 아니라, 전문성이 공적 책임과 연결될 때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
결국 좋은 사회는 모두에게 같은 문을 주는 사회가 아니다. 누구에게는 넓고, 누구에게는 정확하며, 누구에게는 배려 깊은 여러 문을 가진 사회다. 그리고 그 문들을 설계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가장 먼저 길러야 할 민주주의의 기술이다.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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