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고르는 법과 생태계를 만드는 법은 결국 같은 문제다
Hatched by porcorosso
Apr 3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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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금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채용에서 출신학교를 보지 말자는 이야기와, NFT 시장에서 P2E의 제로섬 구조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얼핏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인다. 하나는 노동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 자산과 문화 산업이다. 그런데 둘 다 아주 오래된 질문 하나를 건드린다.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하는 방식이, 그 자체로 가치를 파괴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은 단순히 공정성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시스템 설계의 문제다. 채용에서 학벌을 보는 순간 우리는 사람의 현재 역량보다 과거의 신호를 빠르게 읽으려 한다. NFT 시장에서 토큰 보상에만 기대는 순간 우리는 콘텐츠의 효용보다 유입과 청산의 속도를 먼저 계산한다. 둘 다 편리해 보이지만, 결국 본질을 대체하는 지표에 의존한다.
그래서 이 두 논의를 함께 놓고 보면, 핵심은 의외로 비슷하다. 좋은 시스템은 배제할 정보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성과를 더 잘 드러내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출신학교를 묻지 않는 채용과, 제로섬 토큰을 넘어서는 NFT 모델은 같은 철학을 공유한다. 사람과 상품을 고를 때 “쉽게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중요한 것”을 보게 만드는 일이다.
학벌과 토큰은 왜 자꾸 본질을 가리는가
학벌은 많은 채용 담당자에게 편리한 약속이다. 복잡한 평가를 단순화해 주고, 지원자의 능력을 빠르게 추정하게 해준다. 하지만 그 편리함은 대가를 요구한다. 특정 학교 이름이 일종의 압축 파일처럼 기능하면서, 실제 능력, 성장 가능성, 문제 해결력, 협업력 같은 정보는 뒤로 밀린다. 결국 채용은 사람을 뽑는 일이 아니라, 과거의 선별장치를 다시 구매하는 일에 가까워진다.
P2E도 비슷하다. 처음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플레이만 해도 벌 수 있다는 매력적인 메시지로 시작한다. 하지만 보상이 외부에서 발생하지 않고 새로 들어오는 참여자들의 청산에 의존하면, 구조는 곧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다. 게임을 즐기는 행위가 아니라 수익 실현의 압력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이용자가 아니라 유동성 공급자가 되고, 게임은 문화가 아니라 포지셔닝 게임이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공통점이 드러난다. 학벌 중심 채용과 제로섬 P2E 모두 평가 기준이 실제 생산성을 증명하기보다, 이미 형성된 불평등이나 유입 구조를 재확인한다. 학벌은 이미 누가 좋은 출발선에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토큰 구조는 누가 더 빨리 들어와 빠져나갈 수 있는지를 보상한다. 둘 다 공정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기득권이나 초기 진입자에게 유리한 속임수일 수 있다.
쉬운 지표는 빠른 판단을 가능하게 하지만, 종종 가장 중요한 정보를 숨긴다.
진짜 문제는 차별이 아니라, 잘못된 신호에 대한 중독이다
많은 논쟁은 “차별을 없애자”는 선언으로 끝난다. 물론 그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더 깊게 들어가면, 이 문제는 차별의 윤리만이 아니라 신호에 대한 의존성의 문제다. 사람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그래서 복잡한 것을 단순한 표식으로 바꾸려 한다. 학교 이름, 브랜드, 토큰 가격, 커뮤니티 규모 같은 것들이다. 이 표식들은 빨리 읽히고, 빨리 비교되며, 빨리 결정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 신호들이 시간이 지나면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다는 점이다. 좋은 학교 출신이 좋은 대우를 받으면 더 많은 기회가 쌓이고, 그 결과 학교 이름의 신뢰도는 더 커진다. 인기 있는 NFT 프로젝트는 가격이 오를수록 더 많은 관심을 받고, 관심이 몰릴수록 더 많은 가격 상승을 만든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장이 능력을 평가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평가가 가치를 만들고, 가치가 다시 평가를 강화하는 루프가 작동한다.
이 루프는 강력하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다. 왜냐하면 신호가 본질을 대체하는 순간, 참여자는 본질을 개선하기보다 신호를 조작하는 데 최적화되기 때문이다. 학생은 학습보다 스펙을 쌓고, 창작자는 작품보다 드롭의 희소성을 설계하고, 게임사는 재미보다 토큰 분배 곡선을 조정한다. 결과적으로 시스템은 점점 더 정교해지지만, 점점 덜 진실해진다.
이 관점에서 보면, 출신학교 금지 논의는 단순한 평등 제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채용 시스템이 무엇을 성과로 오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NFT 시장에서의 지속 가능성 논의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가치 창출로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결국 둘 다 “무엇을 보지 말아야 하는가”보다 “무엇을 봐야 하는가”를 묻는다.
좋은 시스템은 배제보다 대체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전환점이 있다. 많은 제도 개혁은 기존의 나쁜 지표를 금지하는 데서 멈춘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일은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정하는 것이다. 학벌을 보지 말자는 말은 옳지만, 그러면 무엇으로 지원자의 가능성을 볼 것인가. P2E의 제로섬 구조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말도 맞지만, 그러면 NFT는 어떤 가치를 제공해야 오래 살아남는가.
좋은 시스템은 단순히 금지하지 않는다. 더 나은 측정 방식과 참여 동기를 설계한다. 채용에서는 학교 이름 대신 과제 수행, 포트폴리오, 구조화된 인터뷰, 상황 판단 테스트, 실제 협업 경험 같은 것이 더 유효한 신호가 될 수 있다. 이는 단지 공정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지원자의 잠재력을 더 직접적으로 보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명문대 학위가 없지만, 실제 업무에서 훨씬 더 뛰어난 문제 정의 능력을 보여준다.
NFT와 Web3 문화 영역도 비슷하다. 지속 불가능한 모델은 대개 “보상”만 있고 “효용”이 없다. 반대로 음악 플랫폼, 팬 커뮤니티, 창작자 후원, 티켓팅, 멤버십, 디지털 소장 경험처럼 실제 Pain Point를 해결하는 구조는 훨씬 오래 간다. 음악 NFT가 단지 가격 상승을 위한 자산이 아니라, 팬이 창작자와 더 깊게 연결되는 입장권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때 NFT는 투기적 증서가 아니라 관계의 인프라가 된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성과를 측정할 때도, 생태계를 설계할 때도, 핵심은 대상에게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어야 할 기능을 더 잘 드러내는 것이다. 학벌 금지는 더 직접적인 평가를 통해 사람을 보게 만들고, 지속 가능한 NFT는 더 직접적인 가치 제공을 통해 문화와 경제를 연결한다. 둘 다 우회로를 줄이는 작업이다.
나쁜 시스템은 신호를 거래하게 만들고, 좋은 시스템은 실제 작동을 드러낸다.
공정함과 지속 가능성은 사실 같은 언어다
처음에는 공정성과 지속 가능성이 별개의 문제처럼 보인다. 하나는 윤리적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이다. 하지만 실은 같은 구조를 공유한다. 공정하지 않은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고, 지속 불가능한 시스템은 결국 공정성을 훼손한다. 왜냐하면 둘 다 참여자가 납득할 수 있는 규칙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채용에서 학벌이 지나치게 강한 신호로 작동하면, 많은 지원자는 노력과 실력으로도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는다. 그러면 조직은 다양성과 혁신을 잃고, 결국 같은 유형의 사람만 남는다. NFT 시장에서 보상이 청산 압력에만 의존하면, 사용자들은 재미와 문화보다 수익에만 반응한다. 그러면 프로젝트는 커뮤니티가 아니라 환매 대기열처럼 변한다.
이것은 단지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 참여 동기의 구조가 생태계의 수명을 결정한다. 사람은 자신이 공정하게 대우받고 있다고 느낄 때 더 오래 남는다. 그리고 자신이 무언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가치를 쌓고 있다고 느낄 때 더 깊게 참여한다. 채용도 마찬가지고, 디지털 문화도 마찬가지다. 지속 가능성은 기술 스택보다 신뢰 구조에서 나온다.
이 관점은 기업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좋은 사람을 빠르게 뽑는 법”과 “커뮤니티를 빠르게 키우는 법”은 같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 둘 다 속도를 위해 본질을 희생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느리더라도 정직한 구조가 이긴다. 면접에서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것이 학벌이 아니라 실제 문제 해결 능력인 조직, NFT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가격이 아니라 효용인 프로젝트가 결국 살아남는다.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것: 지표보다 구조
이 모든 논의를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다. 문제는 사람을 보는 방식, 혹은 기술을 쓰는 방식이 아니라, 그 방식이 어떤 구조를 강화하느냐에 있다. 학벌을 입력값으로 받는 순간 채용은 과거의 분류 체계에 종속되고, 토큰만으로 보상을 설계하는 순간 NFT는 자체 소모형 구조에 갇힌다. 반대로 입력값을 줄이고 실제 작동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바꾸면, 시스템은 비로소 성장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완벽한 무편향이나 완벽한 경제 모델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더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정보는 정말 직무 수행에 필요한가. 이 보상 구조는 외부 유입 없이도 유지되는가. 이 참여자는 무엇을 얻게 되는가. 이 시스템은 신호를 평가하는가, 아니면 실제 능력과 효용을 증폭하는가.
예를 들어, 채용에서 출신학교를 숨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중요한 것은 지원자가 자신의 일을 어떻게 해 왔는지, 어떤 제약을 풀어 왔는지, 어떤 방식으로 배우고 성장했는지를 보게 만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NFT도 단순히 기술을 붙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팬이 왜 지갑을 연결해야 하는지, 창작자가 왜 이 방식을 택해야 하는지, 유저가 왜 오래 남아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과 제도는 사람의 행동을 바꾸기보다, 가치가 드러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Key Takea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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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스템은 금지보다 대체가 중요하다. 나쁜 지표를 없애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자리를 대신할 더 나은 평가 방식을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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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측정되는 것은 종종 본질이 아니다. 학벌, 토큰 가격, 초기 인기 같은 신호는 편리하지만, 실제 능력이나 실제 효용을 왜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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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구조는 외부 청산이 아니라 내부 효용에서 나온다. NFT나 커뮤니티 모델은 참여자가 정말 얻는 가치가 있어야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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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함은 도덕이 아니라 운영 조건이다. 사람들은 공정하다고 느낄 때 더 오래 남고, 더 많이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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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과 제품 설계는 같은 철학을 공유한다. 둘 다 본질을 가리는 신호를 줄이고, 실제 작동과 잠재력을 더 잘 드러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끝으로, 우리가 버려야 할 질문
우리는 너무 자주 “누가 더 좋은 출신인가”, “누가 더 먼저 들어왔는가”, “무슨 이름을 달고 있는가”를 묻는다. 하지만 그 질문들은 시스템이 얼마나 나쁜지 보여줄 뿐, 시스템이 얼마나 좋은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앞으로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이 구조는 사람을 더 잘 보게 만드는가, 아니면 더 쉽게 속이게 만드는가?
채용에서 출신학교를 지우는 일은 출발점일 뿐이다. NFT에서 P2E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도 출발점일 뿐이다. 진짜 변화는 그 다음에 온다. 우리는 무엇을 평가할지보다, 무엇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만들지에 집중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사람을 고르는 법과 생태계를 만드는 법은 하나의 원리로 수렴한다. 좋은 시스템은 더 많은 것을 묻지 않는다. 대신 더 진실한 것을 보게 한다.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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