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은 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가 되는가

porcorosso

Hatched by porcorosso

Aug 0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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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어떤 시대에 더 쉽게 집단적 착각에 빠지는가

한 사회가 이상해지는 순간은 늘 갑작스럽지 않다. 처음에는 말이 조금 과장되고, 그다음엔 책임이 슬쩍 비껴가고, 나중에는 분명한 실패조차 성공으로 포장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묻기 시작한다. 도대체 왜 이토록 비현실적인 판단이 계속 반복되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특정 인물의 기행을 설명하지 않는다. 더 깊은 곳에서는 권력의 구조가 현실 감각을 어떻게 왜곡하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개인의 망상처럼 보이는 현상도, 사실은 제도와 이익관계가 만들어낸 집단적 환각일 수 있다. 한 사회가 긴 시간 동안 시장, 관료, 자본, 이념을 특정 방식으로 결합해 오면, 그 결합 자체가 현실을 보는 눈을 바꿔 버린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누가 이상한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어떤 체제는 왜 비정상을 정상처럼 보이게 만드는가?


망상은 의식의 오류가 아니라 권력의 자기보호일 수 있다

망상이라는 말은 흔히 개인의 정신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망상은 종종 권력이 자기 실패를 은폐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해석의 폐쇄성이다. 현실이 거듭 경고를 보내도, 이미 믿기로 한 세계관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 경고를 왜곡한다. 잘못된 신념이 커질수록 오히려 더 많은 왜곡이 필요해지고, 그 왜곡을 유지하려면 더 강한 공격성, 더 노골적인 부정, 더 많은 책임 전가가 따라온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체계적이다. 처음에는 예외를 만든다. 그다음에는 예외를 규칙으로 바꾼다. 마지막에는 규칙을 의심하는 사람을 비정상으로 낙인찍는다. 이때 현실과의 괴리는 커지지만, 내부자들에게는 오히려 체제의 일관성이 강화된 것처럼 보인다.

집단적 망상은 현실을 몰라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할 경우 지위와 이익이 무너지는 구조에서 생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이상한 행동은 우발적 일탈이 아니다. 오히려 체제가 자기 모순을 봉합하기 위해 발명한 방어기제다. 한 번 봉합이 시작되면, 그 봉합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말과 행동이 또 다른 비현실성을 낳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고 묻지만, 체제 내부에서는 그게 생존 방식이 된다.

개인의 심리와 제도의 정치경제는 분리되지 않는다. 개인은 제도를 통해 확신을 얻고, 제도는 개인의 확신을 빌려 자기 정당화를 완성한다. 그래서 망상은 결코 사적인 문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망상은 권력의 언어가 현실을 대체하는 순간 사회 전체의 운영 원리가 된다.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현실 감각의 재편이다

이 지점에서 신자유주의를 다시 봐야 한다. 흔히 신자유주의는 규제 완화, 민영화, 시장 만능주의 정도로 이해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자유주의의 더 깊은 의미는 사회가 무엇을 ‘현실’로 인정할 것인가를 바꾸는 인식 체계에 있다.

과거의 개발국가는 적어도 겉으로는 성장, 산업화, 국가 주도의 배분을 통해 사회를 설계했다. 물론 권위주의와 불평등이 있었지만, 국가가 경제를 조직하고 책임지는 역할은 분명했다. 그러나 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는 그 책임을 분산시키면서도 권력은 더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시장은 자유를 말했지만, 실제로는 금융과 관료, 대기업, 초국적 자본 사이의 결합을 강화했다.

이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경제의 기준이 생산에서 금융으로 이동한 것이다. 공장을 돌리고 사람을 고용하는 것보다, 자산 가격을 관리하고 신용을 조정하고 위기를 “신속히 수습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됐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경제가 현실의 삶을 돌보는 시스템이 아니라, 숫자와 신뢰와 기대를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바뀌면, 실제 삶의 고통은 뒤로 밀린다.

예를 들어 보자. 한 가게가 매출은 줄어드는데도, 대출을 더 받아 외형을 유지하고, 장부를 더 그럴듯하게 꾸미고, 단기적으로는 신용등급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고 하자.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은 내부가 비어 가는 중이다. 신자유주의 체제도 비슷하다. 성장률, 자산 가격, 투자자 신뢰가 유지되면 문제없어 보이지만, 분배, 노동, 삶의 안전망은 점점 훼손된다.

이런 체제에서는 현실 감각이 왜곡되기 쉽다. 왜냐하면 정책의 성공 기준이 사람들의 삶이 아니라 시장의 반응이 되기 때문이다. 실패는 사회적 고통이 아니라 일시적 충격으로 번역되고, 불평등은 효율로 포장되고, 민주적 통제는 비효율로 취급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경제체제가 아니라 현실을 해석하는 언어가 된다.


위기의 관리는 왜 더 강한 과두권력을 낳는가

많은 사람은 위기가 오면 체제가 약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위기는 기존 권력의 허점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권력이 더 강한 통제 장치를 도입할 명분을 준다. 위기를 “수습”해야 한다는 명목 아래, 결정권은 더 좁은 집단으로 집중된다.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이해하는 핵심은 바로 여기 있다. 위기 극복은 분명 필요했다. 그러나 위기 대응의 방식이 사회적 민주화가 아니라 과두적 재배분으로 기울면서, 관료와 재벌과 초국적 자본의 결합이 강화됐다. 이 결합은 표면적으로는 전문성, 국제 기준, 구조조정의 합리성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손실의 분산과 이익의 집중을 동시에 수행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누가 책임졌는가”가 아니라 “누가 손실을 떠안고 누가 기회를 얻었는가”다. 위기 관리의 이름으로 서민은 해고와 비정규직과 부채를 떠안았고, 기업은 정리되거나 재편되며 더 유리한 조건을 얻었다. 금융은 위험을 가격으로 바꾸는 능력을 얻었고, 국가는 그 과정을 정당화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위기 관리 체제는 본질적으로 손실을 사회화하고 이익을 사유화하는 장치다. 그리고 이런 장치가 반복될수록, 정책 결정자들은 점점 더 현실의 고통보다 시장의 신호를 더 신뢰하게 된다. 그 결과 정책은 사회를 보호하는 방향이 아니라, 시장의 안정감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위기는 체제를 무너뜨리기보다, 체제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때 망상은 단지 비유가 아니다. 권력은 실제로 자신이 만든 결과를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 한다. 손실은 일시적이라 하고, 고통은 불가피하다고 하고, 구조조정은 성장의 전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언어가 반복될수록 사회는 더 불안정해진다.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불안정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현실을 되찾는 방법은 분노보다 구조를 읽는 데 있다

이 모든 것을 보면 쉽게 냉소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답은 단순한 도덕적 분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데 있다. 분노는 필요하지만, 분노만으로는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필요한 것은 현실 왜곡이 어디서 만들어지는지 읽어내는 능력이다.

첫째, 이상한 말과 행동을 개인의 특성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어떤 이해관계를 보호하는지 봐야 한다. 누가 책임을 회피하고, 누가 손실을 떠안고, 누가 이익을 얻는가를 따라가면, 비현실적 언어 뒤의 구조가 드러난다.

둘째, 경제를 숫자와 지표의 문제로 축소하지 말아야 한다. 경제는 배분의 문제이고, 배분은 곧 권력의 문제다. 예산, 금리, 부채, 구조조정, 노동규칙 같은 것들은 기술적 용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삶의 가능성을 정하는 정치적 선택이다.

셋째, 위기 담론을 그대로 믿지 말아야 한다. 위기라는 말은 종종 예외 상태를 정상으로 만드는 데 사용된다. 지금은 비상이라서, 지금은 어쩔 수 없어서, 지금은 빨리 결정해야 해서라는 말은 토론을 멈추게 만든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 사라진다. 왜 이런 위기가 반복되는가?

넷째, 민주주의를 선거의 문제가 아니라 배분의 민주화로 이해해야 한다. 누구를 뽑는가만이 아니라, 누가 신용을 배분하고, 누가 산업을 조직하고, 누가 위기의 비용을 지는지를 물어야 한다. 경제의 실질적 민주화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정보, 금융, 산업, 노동의 결정권을 소수의 과두권력으로부터 되돌려 오는 일이다.

이 관점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집단적 망상은 결국 통제되지 않는 권력의 부작용이기 때문이다. 권력이 견제되지 않으면 스스로의 서사를 현실로 믿기 시작하고, 현실에 대한 비판은 반체제처럼 취급된다. 따라서 현실을 회복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말의 진실성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권력의 분산을 늘리는 것이다.


Key Takeaways

  1. 이상한 행동은 종종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의 방어기제다.
    어떤 말과 판단이 반복적으로 비현실적이라면, 그것이 어떤 권력관계를 유지하는지 먼저 보라.

  2. 신자유주의는 시장 확대만이 아니라 현실 기준의 변경이다.
    사람의 삶보다 시장의 신뢰가 우선될 때, 사회는 고통을 숫자로 오독하게 된다.

  3. 위기는 권력을 약화시키기도 하지만, 더 집중시키기도 한다.
    누가 손실을 떠안고 누가 이익을 얻는지 추적하면 체제의 진짜 작동 방식이 보인다.

  4. 경제의 민주화는 선의가 아니라 배분 권력의 재설계다.
    관료, 재벌, 초국적 자본이 쥔 결정권을 어떻게 분산할지 구체적으로 묻는 것이 핵심이다.

  5. 현실을 되찾으려면 분노보다 구조 분석이 필요하다.
    감정적 반응을 넘어서, 제도와 언어와 이해관계의 연결고리를 읽어내야 한다.


끝으로, 망상을 가장 먼저 치료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우리는 흔히 망상을 개인의 병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 차원에서 더 위험한 것은, 권력이 자기 오류를 고치지 못한 채 오히려 그 오류를 정당화하는 체제다. 그런 체제는 결국 현실을 거부하는 데 능숙해지고, 현실을 말하는 사람을 문제로 취급한다.

그래서 진짜 질문은 이겁니다. 누가 비현실적인가? 개인의 이상한 말과 행동만을 가리키는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손실을 숨기고, 위기를 반복하고, 배분의 권력을 소수에게 몰아주는 시스템 자체가 비현실적일 수 있다. 그 시스템은 겉으로는 합리성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사회 전체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마침내 중요한 통찰은 하나다. 망상은 종종 머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망상은 권력이 현실을 독점하려 할 때 사회 전체에 퍼지는 구조적 현상이다. 그렇기에 현실을 회복하는 일은 단지 더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민주적으로 배분하는 일이다. 현실은 원래 혼자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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