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가는 혼자 탄생하지 않는다: 놀이와 반문화가 가르쳐 주는 행위주체성의 조건

goodteacher1

Hatched by goodteacher1

Aug 1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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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천재의 머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혁신적인 조직과 살아 있는 교실에는 의외로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정답을 빨리 맞히는 사람보다,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가능성을 오래 붙잡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혁신을 말할 때 대개 뛰어난 개인을 떠올리고, 교육을 말할 때는 잘 설계된 커리큘럼을 떠올린다. 이 두 관점은 모두 중요한 사실을 놓친다. 새로운 것은 개인의 머릿속에서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구와 타인과 환경에 연결되는 과정에서 출현한다.

실리콘밸리의 역사를 흔히 기술과 자본의 성공담으로 설명하지만, 그곳의 독특한 에너지는 반문화와 기술문화가 만난 데서 비롯됐다.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않던 사람들과 전자공학에 몰두하던 사람들이 서로 낯선 언어를 교환하면서, 컴퓨터는 중앙 권력의 통제 도구에서 개인의 표현과 자유를 확장하는 도구로 재해석됐다. 한편 어린이의 놀이를 깊이 들여다보면, 아이 역시 주어진 세계를 소비하지 않고 주변의 사물과 사람을 새롭게 연결하며 세계를 다시 만든다.

이 둘을 함께 보면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어떻게 하면 저항과 놀이가 단순한 일탈로 끝나지 않고, 실제 변화를 만들어 내는 행위주체성으로 자랄 수 있을까?

이 글의 주장은 간단하다. 혁신을 만드는 핵심 조건은 창의적인 개인을 선발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고 시도하며 서로의 시도를 증폭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 생태계에서 행위주체성은 개인의 성격이나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힘이 된다.

반항하는 개인보다 중요한 것은 연결의 구조다

스티브 잡스는 흔히 고독한 천재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의 사고를 만든 것은 한 사람의 독창성만이 아니었다. 선불교의 직관과 미니멀리즘, 히피 공동체의 실험정신, 자유로운 표현을 중시한 지역 문화, 전자공학 괴짜들의 기술적 열정, 그리고 도구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출판 문화가 한 사람 안에서 결합했다. 애플이라는 이름 자체도 자연과 기술이라는 이질적인 영역을 붙여 놓은 결과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잡스가 여러 분야의 지식을 많이 암기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는 서로 떨어져 있던 세계 사이를 이동하며 연결의 가능성을 보았다. 사과농장과 컴퓨터, 명상과 제품 디자인, 반문화와 사업, 개인의 자유와 기술의 대중화가 하나의 상상 속에서 만났다. 혁신은 완전히 새로운 재료를 창조하는 능력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지만 서로 만나지 못했던 재료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는 능력에 가깝다.

어린이의 놀이도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상자 하나가 자동차가 되고, 나뭇가지가 지팡이가 되며, 담요가 동굴이 된다. 어른에게는 용도가 끝난 물건이지만, 아이에게는 아직 용도가 결정되지 않은 재료다. 아이는 사물의 고정된 기능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상상과 친구의 반응, 주변 공간의 조건을 함께 고려하면서 놀이의 규칙을 계속 바꾼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단순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연결할지 판단하고, 어떤 규칙을 채택할지 결정하고, 실패한 시도를 반복하거나 버리며, 다른 아이와 협상한다. 즉 놀이에는 목표 설정, 의사결정, 실행, 성찰, 재설계가 모두 들어 있다. 어른이 학습이라고 부르는 활동을 아이는 놀이의 형태로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창의성은 머릿속에 숨어 있는 보물이 아니다. 창의성은 사람과 도구와 환경이 만날 때 잠시 나타나는 관계적 사건이다.

이 관점은 개인의 행위주체성을 다시 보게 한다. 행위주체성은 혼자서 무엇이든 해내는 자율성과 다르다. 목표를 세우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하지만, 그 능력이 실제로 드러나려면 시도할 공간, 반응해 줄 타인, 사용할 수 있는 도구, 실패를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다. 같은 아이도 질문을 환영하는 교실에서는 적극적으로 탐색하지만, 틀린 답을 즉시 평가하는 교실에서는 침묵할 수 있다. 행위주체성은 사람 안에 일정하게 들어 있는 양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강화되거나 약화되는 잠재력이다.

행위주체성은 자유가 아니라 공동 설계다

교육에서 행위주체성을 개인의 선택권으로만 이해하면 문제가 생긴다. 학생에게 원하는 것을 하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정해진 답, 정해진 시간, 정해진 평가 기준만 허용한다면, 그것은 선택의 형식을 빌린 통제에 불과하다. 반대로 모든 것을 학생의 자율에 맡기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자원과 경험이 부족한 학습자에게 아무런 지원 없이 자유를 주는 것은 주체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방치하는 일일 수 있다.

따라서 행위주체성에는 세 층위가 필요하다. 첫째는 개인의 행위주체성이다. 나는 무엇을 궁금해하는가, 어떤 목표를 세울 것인가, 다음에 무엇을 시도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힘이다. 둘째는 공동 행위주체성이다. 교사, 부모, 또래, 지역사회, 도구와 환경이 학습자의 목표를 함께 지지하고 조정하는 관계다. 셋째는 집단적 행위주체성이다. 개인의 차이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공동의 목적을 향해 함께 움직이는 힘이다.

이 세 층위는 사다리처럼 순서대로 올라가는 단계가 아니다. 서로를 순환적으로 만든다. 한 아이의 엉뚱한 질문이 친구들의 새로운 놀이를 만들고, 그 놀이가 교사의 수업 설계를 바꾸며, 바뀐 환경이 다시 더 많은 아이의 질문을 촉발할 수 있다. 한 명의 시도가 집단의 문화가 되고, 집단의 문화가 개인에게 더 큰 시도할 용기를 돌려주는 구조다.

실리콘밸리의 초기 문화도 이런 순환을 보여 준다. 기술광들은 기계의 작동 원리를 파고들었고, 반문화 세대는 기존 권위와 생활방식에 질문을 던졌다. 두 집단은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어울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경계했다. 컴퓨터는 한쪽에겐 통제와 비인간화의 상징이었고, 다른 쪽에겐 정교한 문제 해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기술을 인간의 표현과 자유를 위한 도구로 다시 상상하는 매개가 등장하면서 두 문화는 새로운 공동 목표를 발견했다.

이 사례가 주는 교훈은 반항적인 사람을 많이 모으면 혁신이 생긴다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차이를 유지한 채 공동의 설계 과정에 참여할 때 혁신이 생긴다는 것이다. 차이는 그 자체로 자산이 아니다. 차이가 번역되고, 충돌하고, 시험되고, 다시 조합될 수 있는 구조가 있을 때 비로소 자산이 된다.

놀이가 혁신의 원형인 이유

놀이에는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네 가지 조건이 자연스럽게 들어 있다.

첫째, 놀이에는 가설이 작다. 아이는 거대한 계획서를 작성하지 않는다. “이 돌을 배로 쓰면 어떨까?”라고 생각하고 바로 시험한다. 실패해도 손실이 작기 때문에 다음 시도로 넘어갈 수 있다. 조직에서도 초기 아이디어를 완성된 사업계획으로 만들기 전에 작은 실험으로 바꾸면 비슷한 효과가 생긴다.

둘째, 놀이에는 규칙이 유연하다. 규칙은 필요하지만 신성하지 않다. 참여자들이 재미와 목적을 잃으면 규칙을 협상해 바꾼다. 혁신 조직도 기존 절차를 전부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규칙이 목적을 돕는 수단인지, 아니면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장치인지 계속 묻는 것이다.

셋째, 놀이에는 관찰과 반복이 있다. 아이는 친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탑이 왜 무너지는지, 어떤 역할이 재미있는지를 세심하게 본다. 그 관찰을 다음 행동에 반영한다. 학습과 혁신은 한 번의 영감보다 짧은 실행과 피드백의 반복에서 깊어진다.

넷째, 놀이에는 사물의 재발견이 있다. 블록, 종이, 물, 의자처럼 평범한 물질이 새로운 기능을 얻는다. 디지털 시대의 학습도 책에만 머물지 않는다. 디지털 기기, 자연물, 공간, 이미지, 다른 사람의 질문이 모두 학습의 매개가 된다. 지식은 특정 장소에 보관된 내용이 아니라 여러 연결망을 가로지르며 구성되는 과정이다.

이 네 가지 조건을 합치면 놀이의 핵심은 단순한 자발성이 아니라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공동 실험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자유는 놀이를 만들지 못한다. 상자, 친구, 시간, 장소 같은 구체적 조건이 있기 때문에 상상이 움직인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자원이 무한하고 실패 비용이 전혀 없다면 오히려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도할 수 있을 만큼 안전하고, 배울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인 제약을 설계하는 일이다.

조직과 교실을 바꾸는 새로운 설계 원칙

그렇다면 행위주체성을 실제로 키우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 첫째, 사람을 결핍의 관점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 어린이를 지식이 부족한 빈 그릇으로만 보면 교사는 전달자가 되고, 아이는 지시를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가 된다. 신입사원을 경험 없는 인력으로만 보면 조직은 매뉴얼을 주입하고, 그 사람이 가진 다른 관점과 생활 경험을 활용하지 못한다.

이것은 준비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이미 세계와 연결된 존재로 볼 때 더 정교한 지원이 가능해진다. “무엇을 모르는가?”만 묻는 대신 “무엇에 이미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가?”, “어떤 경험을 새로운 문제와 연결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교육자는 학생의 부족함을 채우는 사람인 동시에, 학생이 가진 관심과 환경을 학습의 재료로 전환하는 설계자다.

둘째, 정답을 제공하는 시간을 줄이고 좋은 조건을 만드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좋은 교사는 모든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 더 나은 질문을 만들 수 있도록 자료와 관계와 시간을 배치하는 사람이다. 좋은 리더도 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팀원들이 문제를 정의하고 실험하고 서로 피드백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예를 들어 회의에서 리더가 처음부터 해결책을 제시하면 팀은 그 해결책을 평가하는 역할에 머문다. 반면 문제를 관찰한 장면, 아직 확인되지 않은 가정, 가능한 작은 실험을 먼저 공유하게 하면 구성원들은 공동 설계자가 된다. 회의의 산출물도 “누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그치지 않고, “무엇을 배워야 하며 어떤 신호가 다음 판단을 바꿀 것인가”가 된다.

셋째, 실패를 무조건 칭찬하지 말고 학습 가능한 실패로 바꾸어야 한다. 실패 자체는 가치가 없다. 실패에서 가설이 수정되고, 관찰이 축적되고, 다음 행동이 달라질 때 가치가 생긴다. 아이의 놀이가 끊임없이 변하는 이유도 실패를 낭만화해서가 아니라, 실패가 곧바로 다음 시도의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넷째, 개인의 성과만 측정하지 말고 연결의 질을 관찰해야 한다. 누가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냈는가만 묻지 말고, 누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는가, 누가 조용한 구성원의 관점을 끌어냈는가, 어떤 도구와 자료가 새로운 연결을 가능하게 했는가를 살펴야 한다. 집단적 행위주체성은 개인별 점수의 합보다 관계의 구조에 더 가깝다.

Key Takeaways

  • 문제보다 연결을 먼저 관찰하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전에 서로 만나지 않던 사람, 분야, 도구가 무엇인지 적어 보라.
  • 작은 실험의 단위를 설계하라. 거대한 계획을 요구하기보다 하루나 일주일 안에 가설을 시험할 수 있는 과제를 만들라.
  • 선택권과 지원을 함께 제공하라. 목표와 방법을 일부 학습자에게 맡기되, 자료, 질문, 피드백, 시간을 충분히 배치하라.
  • 규칙의 목적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라. 현재의 절차가 학습과 창조를 돕는지, 단지 익숙함을 보존하는지 물어보라.
  • 성과보다 공동 설계를 기록하라. 누가 답을 냈는지만 보지 말고, 누가 질문을 바꾸고 다른 사람의 시도를 가능하게 했는지 기록하라.

혁신가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믿음은 혁신가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이 믿음은 두 가지 방식으로 해롭다. 조직은 소수의 천재를 찾아 의존하게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창의성이 없다고 단념한다. 교육은 아이를 미래의 시민으로만 취급하며, 현재 이미 발휘하고 있는 판단과 상상과 참여를 과소평가한다.

그러나 혁신의 역사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 새로운 세계를 만든 사람들은 기존 질서에 질문을 던졌지만, 홀로 산속에서 아이디어를 완성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책과 공동체와 기술과 자연과 논쟁 속에서 자신을 형성했다. 어린이도 혼자서 놀이를 발명하는 것이 아니다. 친구의 말, 교사의 기다림, 공간의 구조, 손에 잡힌 물건이 함께 놀이를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가 길러야 할 것은 단순한 순응적 학습 능력도, 자기주장만 강한 개인주의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연결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타인의 가능성을 키우며, 공동의 세계를 다시 설계하는 능력이다. 이것이 개인 행위주체성과 공동 행위주체성, 집단적 행위주체성을 하나로 묶는 핵심이다.

가장 혁신적인 환경은 사람들에게 “다르게 생각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다르게 생각해도 안전하고, 그것을 함께 시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결국 교실과 조직의 질문은 “누가 가장 창의적인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의 관계와 도구와 규칙은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가능성이 나타날 자리를 만들고 있는가? 혁신은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미래를 만드는 사람은 미리 정해진 혁신가가 아니라, 함께 배우고 놀고 실험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주체가 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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