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성을 키우려면 왜 교육은 더 늦게 평가해야 하는가

goodteacher1

Hatched by goodteacher1

Apr 25, 2026

7 min read

89%

0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똑똑한 도구가 아니라, 더 똑똑한 경계다

우리는 오랫동안 기술이 똑똑해질수록 인간이 덜 해야 할 일도 늘어난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사실 더 위험한 변화는 기계가 지식을 생성하는 순간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을 시작하는 순간에 온다. 글을 쓰는 AI보다 더 큰 전환은, 말로 지시하면 스스로 다른 소프트웨어를 부르고, 사람에게 연락하고, 일의 다음 단계를 알아서 이어가는 AI다.

이때 질문은 단순해진다. 기계가 더 유능해질수록 우리는 무엇을 더 믿어야 하는가? 정답은 성능이 아니라 절차, 지능이 아니라 경계, 결과가 아니라 기억과 판단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 질문은 교육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학생이 무언가를 해냈다고 해서 배운 것은 아니다. 해냈던 과정을 내부에서 다시 조직하고, 시간이 지나도 꺼내 쓸 수 있도록 응고시키는 일이 뒤따라야 진짜 학습이 된다.

기계의 다음 단계와 학습의 다음 단계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둘 다 더 많은 행동을 요구하지만, 둘 다 더 많은 자유를 바로 주면 위험해진다. 그래서 핵심은 자유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유가 작동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생성형의 다음은 대화형이 아니라, 행위형이다

많은 사람들은 AI의 진화를 텍스트를 잘 만드는 방향으로만 상상한다. 하지만 진짜 전환은 생성이 아니라 행위성이다. 말하자면, AI가 답변을 잘하는 수준을 넘어, 목표를 이해하고, 필요한 도구를 찾아 연결하고, 다른 사람 또는 다른 AI와 협업하며, 하나의 일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단계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능 추가가 아니다. 도구의 정의 자체가 바뀐다. 기존의 소프트웨어는 사용자의 손끝에서만 움직였다. 버튼을 누르면 반응하고, 입력하면 출력한다. 반면 행위형 AI는 사용자의 명령을 시작점으로 삼아, 상황을 해석하고, 중간 단계를 스스로 조직하고, 때로는 인간의 개입 없이도 다음 행동을 선택한다. 이 순간 기술은 더 이상 정적인 물건이 아니라, 느리지만 분명하게 준주체적 행위자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아름다움과 불안은 동시에 발생한다. 행위성이 커질수록 편리함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예를 들어, 여행 일정을 짜는 일을 생각해 보자. 예전에는 항공권을 찾고, 숙소를 비교하고, 식당을 검색하고, 일정표를 따로 만들고, 각 예약 사이트를 돌아다녀야 했다. 행위형 AI는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대화 흐름 안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능력은 반대로, 잘못된 목표를 잘못된 방식으로 확장하는 힘이기도 하다. 작은 오류가 여러 시스템을 통과하며 증폭될 수 있다.

기술의 진짜 문제는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AI를 설계할 때 단순히 얼마나 잘 아는지를 묻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된다. 어떤 경계를 넘지 못하게 할 것인가, 어떤 상황에서는 사람에게 되돌려 보낼 것인가, 어떤 행동은 기록되고 감사 가능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것은 안전의 문제가 아니라 통치의 문제다. 행위성을 허용하는 순간, 통제 방식도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육이 실패하는 지점도 사실은 ‘행동’이 아니라 ‘내면화’다

교육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학생이 수업 시간에 참여했고, 과제를 수행했고, 발표도 했으니 배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이 곧 학습은 아니다. 어떤 활동은 그 순간에는 그럴듯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더 나쁘게는 얕은 이해가 오개념으로 굳어지기도 한다. 학습의 본질은 단순한 산출이 아니라 기억의 응고와 재응고, 즉 흩어진 정보를 하나의 프로그램처럼 내부에 묶어 두는 과정에 있다.

예를 들어 문학 작품을 읽는 일을 생각해 보자. 학생이 수업 시간에 등장인물을 말하고, 줄거리를 요약하고, 인상 깊은 문장을 적었다고 해서 작품을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 작품이 다른 상황에서 의미 있게 작동하려면, 장면과 인물, 문체와 주제, 자신의 경험이 내부에서 다시 엮여야 한다. 이 재구성이 일어나야 학생은 새로운 문제를 만났을 때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전이다.

그런데 교육 현장에서는 종종 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수업은 활동이 많아지고, 평가도 수업 안에 녹아들고, 기록도 빠짐없이 남지만, 정작 학생 머릿속에는 무엇이 남았는지 묻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역동적인 수업인데, 속을 들여다보면 지식이 정리되는 시간은 없다. 학생은 많이 움직였지만 오래 기억하지 못하고, 교사는 많은 증거를 남겼지만 깊은 이해를 확인하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불편한 사실과 마주해야 한다. 과정 중심이라는 말이 언제나 진짜 과정의 이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과정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응고의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 즉, 더 많은 참여가 더 깊은 배움을 뜻하지는 않는다.


AI와 교육은 같은 함정에 빠져 있다: “더 많은 인터랙션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든다”는 착각

AI와 교육은 겉보기엔 전혀 다른 분야다. 하나는 기계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기르는 일이다. 그런데 둘 다 같은 유혹에 빠진다. 상호작용이 많을수록 좋다는 믿음이다.

AI 쪽에서는 대화가 길어질수록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목표가 흐려지고, 중간 지시가 누적되며, 잘못된 분기점이 생기기 쉽다. 시스템이 다른 시스템을 호출할수록 편리함은 늘지만, 오류의 책임 소재는 흐려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대화량이 아니라, 목표를 끝까지 유지하는 구조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활동이 많고, 협력하고, 발표하고, 과정이 드러난다고 해서 학습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핵심 개념을 차분히 응고시키는 시간 없이 계속 수행만 하면, 학생은 재미는 느껴도 내부 모델을 만들지 못할 수 있다. 교육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학생이 얼마나 열심히 움직였는가가 아니라, 그 움직임이 어떤 지식 구조를 남겼는가다.

여기서 하나의 프레임이 유용하다. 우리는 도구와 교육을 둘 다 세 단계로 봐야 한다.

  1. 입력 단계: 정보를 받는다. 읽고, 듣고, 본다.
  2. 조작 단계: 정보를 사용한다. 말하고, 풀고, 시도한다.
  3. 내면화 단계: 정보를 재구성한다. 나중에도 쓸 수 있는 구조로 만든다.

많은 시스템이 2단계에 매달린다. AI는 답변과 행동의 속도에 집착하고, 교육은 수업 시간의 참여와 활동에 집착한다. 그러나 진짜 성과는 3단계에서 결정된다. AI에서는 안전한 행위의 구조가, 교육에서는 깊은 이해의 구조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좋은 시스템은 빠르게 반응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나중에도 무너지지 않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주도권을 쥐고, 무엇이 다시 돌아와야 하는가

행위형 AI와 깊은 학습을 함께 생각하면, 놀라운 공통점이 보인다. 둘 다 결국 주도권의 설계 문제다. AI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가 있어야 한다. 학생은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활동이 기억과 개념으로 되돌아가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

이것을 나는 반환성의 원리라고 부르고 싶다. 어떤 시스템도 단순히 밖으로만 뻗어 나가면 안 된다. 반드시 다시 안으로 돌아와야 한다. AI는 행동 후에 검증으로 돌아와야 하고, 교육은 수행 후에 재구성으로 돌아와야 한다. 외부 세계에서 한 번 작동한 것이 내부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시스템은 겉돌 뿐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AI 비서를 쓴다고 해보자. 비서가 회의 초대장을 보내고, 일정 조정하고, 메모를 정리하는 일은 훌륭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뒤다. 어떤 요청이 실행되었는지, 어떤 예외가 발생했는지, 어떤 결정을 누구의 책임으로 남길 것인지가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업무는 자동화되지만 조직의 판단은 흐려진다.

교육도 같다. 학생이 프로젝트를 수행한 뒤에는 그 프로젝트가 무엇을 배웠는지 언어화하고, 개념화하고, 다음 과제에 전이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발표 한 번으로 끝나면 기억은 흩어진다. 반대로 수행 뒤에 짧은 회고, 개념 지도화, 오류 교정이 붙으면 학습은 응고된다. 즉, 행동의 끝에 재구성의 의식을 붙여야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진정한 교육 설계는 활동 중심이 아니라 왕복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밖으로 나가서 부딪히고, 다시 안으로 돌아와 의미를 묶고, 다시 바깥으로 나가 적용한다. AI 안전도 마찬가지다. 시스템이 외부 세계에 작동할수록, 더 강한 복귀 장치, 더 엄격한 경계, 더 투명한 감사가 필요하다.


실천은 결국 설계의 문제다: 더 많이 시키지 말고, 더 잘 되돌리자

이 논의를 실제로 적용하려면 한 가지 단순한 원칙을 기억하면 된다. 행동을 늘리는 것보다, 되돌림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에서는 이렇게 바꿀 수 있다. 학생에게 프로젝트를 많이 시키는 대신, 각 프로젝트 뒤에 반드시 세 가지 질문을 붙인다. 무엇을 새로 알게 되었나, 무엇을 여전히 오해하고 있나, 다음에 같은 문제를 만나면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소감문이 아니다. 학습을 기억 속에 응고시키는 장치다.

AI에서는 비슷한 구조가 필요하다. AI가 다른 도구를 호출할 수 있다면, 어떤 목적에서 호출했는지, 어떤 근거로 선택했는지, 실패했을 때 어디서 멈출지 기록되어야 한다. 즉, 행위의 자유에는 되돌림 가능한 로그와 인간의 개입점이 붙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유능함은 책임을 밀어낸다.

우리가 흔히 놓치는 점은, 자유와 통제는 서로 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좋은 시스템은 자유를 주되, 그 자유가 나중에 검증 가능하고 재구성 가능하게 설계된다. 학생에게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탐구하도록 하되, 나중에 그 사고를 다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말할 수 없는 이해는 종종 이해가 아니라 순간의 몰입일 뿐이다.

Key Takeaways

  • 행동의 양보다 반환 구조가 중요하다. AI든 교육이든, 바깥으로 나간 것이 다시 내부를 바꾸도록 설계해야 한다.
  • 대화가 길어지는 것과 이해가 깊어지는 것은 다르다. 상호작용이 많아도 목표와 기억이 응고되지 않으면 성과는 얕아진다.
  • 평가의 목적은 증거 수집이 아니라 재구성 촉진이어야 한다. 학생이 무엇을 했는지보다, 무엇이 내부 구조로 남았는지가 중요하다.
  • 행위형 시스템에는 반드시 경계와 복귀 지점이 필요하다. AI는 안전한 인터럽트와 감사 가능성이, 교육은 회고와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 좋은 설계는 자유를 없애지 않는다. 대신 자유가 무너지지 않도록, 다시 생각하고 다시 묶는 시간을 제공한다.

우리가 진짜로 설계해야 하는 것은 ‘똑똑한 반응’이 아니라 ‘오래 가는 구조’다

생성형 AI의 다음 단계가 대화형 AI라면, 그 본질은 단지 말주변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더 큰 변화는 기계가 세계 속에서 행동하는 힘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교육에서도 진짜 과제는 활동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경험을 통해 내부에 오래 남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이 둘을 함께 놓고 보면 하나의 결론이 선명해진다. 인간은 언제나 더 강한 도구를 원하지만, 강한 도구를 다루는 능력은 자동으로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기술에서는 경계가 필요하고, 교육에서는 응고가 필요하다. 경계는 권한의 폭주를 막고, 응고는 경험의 휘발을 막는다.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시스템을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시스템이 무언가를 한 뒤 무엇으로 돌아오게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AI는 인간의 통제로 돌아와야 하고, 학습은 개념의 구조로 돌아와야 한다. 그때 비로소 기술은 유능해지고, 교육은 깊어진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앞으로의 시대를 가르는 진짜 기준일지도 모른다. 누가 더 많이 말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잘 되돌아오느냐.

Sources

← Back to Library

Hatch New Ideas with Glasp AI 🐣

Glasp AI allows you to hatch new ideas based on your curated content. Let's curate and create with Glasp AI :)

Start Hatch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