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선택권만 주면 행위주체성이 자랄까

goodteacher1

Hatched by goodteacher1

Aug 21, 2026

8 min read

84%

0

아이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교실에 재료를 많이 놓고, 자유롭게 고르게 하고, 교사는 뒤로 물러나 있으면 아이는 저절로 자기 배움의 주인이 될까?

그렇지 않다. 행위주체성은 개인 안에 완성된 채 들어 있는 능력이 아니라, 관계와 환경 속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힘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무엇을 선택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어떤 재료와 만났는지, 누가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실패와 수정이 허용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공동의 배움으로 확장되었는지에 있다.

이 관점은 교육의 익숙한 장면을 다시 보게 한다. 조용히 앉아 교사의 설명을 듣는 아이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블록을 이리저리 옮기며 다리를 만들고 무너뜨리는 아이, 친구의 놀이를 관찰하다가 새로운 규칙을 제안하는 아이, 말없이 그림의 색을 바꾸는 아이도 이미 목표를 세우고 판단하며 세계에 개입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움직임을 배움으로 읽어낼 수 있는가이다.

행위주체성은 선택권이 아니라 관계의 산물이다

교육에서 행위주체성은 자주 자율성과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아이가 스스로 정하고, 스스로 행동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능력이라는 설명이다. 이 정의는 중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결정하는 상태를 자율성의 이상으로 삼으면, 행위주체성은 결국 의지가 강한 개인의 특성이 되고 만다.

하지만 실제 인간의 행동은 그렇게 독립적이지 않다. 아이가 종이 상자를 자동차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상자라는 물질이 있었기 때문이고, 자동차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이전의 경험과 이야기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승객 역할을 맡아 주었기 때문에 놀이가 지속되었고, 교사가 상자를 버리지 않고 관찰했기 때문에 아이의 시도가 교육적 장면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를 간단히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행위주체성은 내가 가진 능력이라기보다, 내가 세계와 맺는 관계가 만들어 내는 가능성이다.

이 관점에서 행위주체성은 세 층으로 작동한다. 첫째는 학생 행위주체성이다. 아이가 자신의 관심을 알아차리고, 무엇을 해 볼지 결정하며, 그 결과를 돌아보는 차원이다. 둘째는 공동 행위주체성이다. 교사, 또래, 가족, 공간, 재료가 아이의 시도를 지지하고 방향을 바꾸는 차원이다. 셋째는 집단적 행위주체성이다.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발견하고 함께 행동하는 차원이다.

세 층은 계단처럼 순서대로 올라가는 단계가 아니다. 아이 개인의 호기심이 또래와의 협력을 만들고, 그 협력이 다시 아이의 생각을 바꾸며, 집단의 목표가 개인의 행동을 자극한다. 행위주체성은 개인에서 집단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관계와 집단 사이를 순환한다.

따라서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었는가?”라는 질문은 너무 좁다. 더 정확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 환경은 아이가 자신의 선택을 시험하고, 타인의 반응을 해석하며, 새로운 선택을 만들어 내도록 돕는가?

놀이가 보여 주는 배움의 실제 구조

놀이가 교육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즐겁기 때문만이 아니다. 놀이는 학습이 실제로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압축해서 보여 준다.

예를 들어 네 명의 아이가 큰 천과 나무 막대기로 집을 만든다고 하자. 처음에는 한 아이가 천을 지붕처럼 덮고, 다른 아이가 막대를 세운다. 천이 계속 흘러내리자 한 아이는 의자를 가져오고, 다른 아이는 매듭을 묶자고 제안한다. 집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의 수를 두고 갈등이 생기면, 아이들은 규칙을 만들거나 공간을 넓힌다. 완성된 집은 처음의 계획과 전혀 다를 수 있다.

이 짧은 놀이 안에는 여러 학습 과정이 동시에 들어 있다. 아이들은 목표를 설정한다. 물질의 저항을 경험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조정한다. 실패를 데이터로 사용한다. 이전의 경험을 현재의 재료와 연결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행동을 선택한다.

교과서식 학습에서는 이런 과정을 인위적으로 분리하기 쉽다. 문제를 이해하고, 방법을 선택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일을 각각의 단계로 나눈다. 그러나 놀이에서는 이 과정이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목표가 행동 중에 생기고, 규칙이 갈등 중에 만들어지며, 지식이 재료와의 접촉 속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놀이를 단순한 휴식이나 수업 전 활동으로 취급하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놀이는 행위주체성이 실제로 작동하는 실험실이다.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무엇을 연결할지 판단하고, 무엇을 반복할지 선택하며, 자신의 생각을 물질적 형태로 바꾼다.

여기서 교사의 역할도 달라진다. 교사는 놀이를 정해진 학습 목표에 끼워 맞추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관찰자도 아니다. 교사는 아이들의 관심이 지속되거나 변형될 수 있도록 공간과 재료를 구성하고, 아이들이 놓친 가능성을 질문으로 열어 주며, 서로 다른 생각이 만날 수 있는 장면을 설계한다.

가령 아이들이 물웅덩이에 나뭇잎을 띄우고 있다면 교사는 “이것은 부력에 관한 실험이야”라고 설명할 필요가 없다. 대신 “어떤 잎은 가라앉고 어떤 잎은 뜨는 이유가 뭘까?”, “배가 더 많은 돌을 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을 수 있다. 이때 질문은 놀이를 교과로 변환하는 장치가 아니다. 아이가 이미 하고 있는 탐색을 더 멀리 밀어 주는 사고의 발판이다.

좋은 환경은 행동을 지시하지 않고 가능성을 제안한다

학습 환경을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시설과 장비를 떠올린다. 그러나 행위주체성의 관점에서 환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환경은 특정 행동을 쉽게 만들고, 다른 행동은 어렵게 하며, 어떤 생각은 중요하게 보이게 하고 다른 생각은 사라지게 한다.

같은 교실이라도 책상과 의자가 모두 한 방향을 향하고 있으면 아이들은 교사의 설명을 기다리기 쉽다. 반대로 이동 가능한 재료, 열린 공간, 다양한 질감의 물체, 기록할 수 있는 도구가 함께 있으면 아이들은 주변을 탐색하며 스스로 관계를 만든다. 환경은 “이렇게 해”라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행동의 범위를 조절한다.

이때 핵심은 재료의 양이 아니다. 재료가 너무 많으면 선택이 오히려 피상적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재료가 여러 해석을 허용하는가이다. 종이 한 장은 그림이 될 수도 있고, 표가 될 수도 있으며, 편지가 될 수도 있고, 접어서 만든 구조물이 될 수도 있다. 정답이 하나인 교구보다 변형 가능한 재료가 행위주체성을 더 오래 자극하는 이유다.

환경은 물리적 공간만을 뜻하지도 않는다. 시간의 구조, 대화의 규칙, 실패에 대한 반응, 교사의 시선도 모두 환경이다. 아이가 질문했을 때 서둘러 답을 주는 교실에서는 질문이 의존의 신호가 되기 쉽다. “그건 네가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되돌려 주는 교실에서는 질문이 탐색의 출발점이 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관계적 안전감이다.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내놓았을 때 웃음거리가 되거나 즉시 틀렸다는 판정을 받으면, 선택권이 있어도 행위주체성은 약해진다. 반대로 시도가 존중되고 수정이 자연스러운 교실에서는 아이가 아직 확신하지 못한 생각도 밖으로 꺼낼 수 있다.

이 점에서 교사의 개입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개입의 타이밍과 방향의 문제다. 교사가 너무 빨리 해결하면 아이의 판단 공간이 사라진다. 너무 늦게 개입하면 일부 아이만 놀이의 방향을 독점할 수 있다. 좋은 개입은 아이를 대신해 결정하지 않으면서도, 아이가 더 풍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조건을 바꾼다.

관찰은 평가가 아니라 행위주체성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행위주체성은 항상 크고 명확한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발표를 자청하거나 리더 역할을 맡는 아이만 주도적인 것은 아니다. 친구의 행동을 오래 바라보다가 필요한 재료를 조용히 건네는 아이, 놀이의 규칙을 기록하는 아이, 실패한 구조물을 다시 살펴보는 아이에게도 행위주체성이 있다.

따라서 교사는 행동의 크기보다 방향과 지속성을 관찰해야 한다. 아이가 무엇에 반복해서 돌아오는가? 어떤 순간에 표정과 몸의 움직임이 달라지는가? 누구의 제안에 반응하는가? 무엇을 바꾸고 싶어 하는가? 이런 질문은 아이를 평가하기 위한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아이가 어떤 세계를 만들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한 탐색이다.

관찰의 기록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블록 놀이에 참여함”이라는 문장은 거의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는다. “친구들이 만든 탑이 무너지자 블록의 넓은 면을 아래에 놓자고 제안했고, 세 번 구조를 바꾼 뒤 탑의 높이를 비교했다”라고 기록하면 아이의 행위주체성이 보인다. 목표 설정, 판단, 협력, 반복, 반성이 한 장면 안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록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만든다. 완성된 작품만 남기면 실패와 망설임과 협상의 흔적이 사라진다. 하지만 배움은 흔히 완성품보다 그 이전의 수정 과정에 더 많이 들어 있다. 아이가 왜 계획을 바꾸었는지, 무엇이 생각을 움직였는지, 누구와의 만남이 방향을 바꾸었는지를 기록할 때 학습은 살아 있는 과정으로 보인다.

교사 자신도 이 과정에서 학습자가 된다. 아이가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 때 교사는 자신의 수업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아이의 놀이가 교사의 전문성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는 셈이다. 공동 행위주체성이란 교사가 아이를 지원하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교사와 아이가 서로의 가능성을 바꾸는 관계다.

아이의 행위주체성을 키운다는 것은 아이를 더 통제 가능한 학습자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교사와 환경까지 함께 변할 준비를 하는 일이다.

자유로운 교실보다 응답하는 교실이 필요하다

여기서 하나의 오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행위주체성을 존중하는 교육은 모든 것을 아이에게 맡기는 교육이 아니다. 선택지를 무한히 늘리고, 교사의 방향 제시를 없애며, 아이가 원하는 것만 하도록 두는 것이 아니다.

완전한 방임은 행위주체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언어가 풍부하고 사회적 자신감이 높은 아이가 공간을 차지하게 만들 수 있다. 조용한 아이, 새로운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이는 자유로운 공간에서 더 쉽게 주변부로 밀려날 수 있다.

행위주체성을 위한 교실은 자유로운 교실보다 응답하는 교실에 가깝다. 아이의 행동을 보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필요한 조건을 제공하며, 다시 아이의 반응을 살피는 교실이다. 여기에는 구조가 있지만 고정된 결론은 없다. 교사는 재료와 시간과 질문을 준비하지만, 그 만남이 어떤 배움으로 이어질지는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간다.

실천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순환을 사용할 수 있다.

  1. 포착하기: 아이가 반복해서 시도하거나 관심을 보이는 장면을 세심하게 본다.
  2. 열어 두기: 정답을 제공하기보다 새로운 재료, 질문, 친구와의 만남을 연결한다.
  3. 기다리기: 즉시 결과를 요구하지 않고 아이가 자신의 가설을 시험할 시간을 준다.
  4. 되비추기: 아이가 한 선택과 변화를 말이나 이미지로 다시 볼 수 있게 한다.
  5. 확장하기: 개인의 발견을 또래의 공동 문제나 더 넓은 생활의 질문으로 연결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교실의 물을 자꾸 흘린다면 “조심해”라고 끝낼 수도 있다. 그러나 교사는 물이 흐르는 길을 관찰할 수 있는 투명한 관, 다양한 높이의 판, 컵과 흙을 제공할 수 있다. 아이들은 곧 물을 모으고, 막고, 방향을 바꾸며, 어느 구조가 더 오래 유지되는지 비교할 것이다. 생활 속 불편이 공동의 탐구로 바뀌는 순간, 개인의 행위주체성은 집단적 행위주체성으로 확장된다.

이런 배움은 선형적이지 않다. 처음의 목표가 끝까지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고, 계획에 없던 질문이 가장 중요한 발견이 될 수도 있다. 교육의 품질은 계획을 얼마나 완벽하게 지켰는가가 아니라, 계획과 실제의 차이에서 얼마나 풍부한 배움을 읽고 응답했는가로 판단해야 한다.

Key Takeaways

  1. 선택권보다 선택의 조건을 설계하라. 아이에게 고르라고 말하기 전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재료, 충분한 시간, 실패해도 안전한 관계를 마련한다.
  2. 놀이를 결과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연속으로 관찰하라. 아이가 무엇을 반복하고, 언제 계획을 바꾸며, 누구와 협력하는지 기록한다.
  3. 교사의 개입을 줄이는 대신 정교하게 하라. 아이를 대신해 해결하지 말고, 더 나은 탐색이 가능하도록 질문과 환경을 조정한다.
  4. 조용한 행위주체성도 발견하라. 말이 많거나 앞에 나서는 행동만 주도성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관찰, 재료의 선택, 작은 수정, 관계를 잇는 행동도 중요하게 본다.
  5. 개인의 관심을 공동의 문제로 연결하라. 한 아이의 발견이 또래의 질문이 되고, 교실의 공동 실험이 되며, 생활 세계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돕는다.

배움의 주인은 아이가 아니라 관계망이다

교육은 오랫동안 배움을 개인의 내부에 저장되는 것으로 상상해 왔다. 교사가 지식을 전달하면 아이가 그것을 습득하고, 평가를 통해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이 모델에서는 행위주체성도 개인이 소유한 능력처럼 취급된다. 능력이 높은 아이는 스스로 배우고, 낮은 아이는 더 많은 지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배움이 연결망 속에서 발생한다면 질문은 달라진다. 누가 더 의지가 강한가가 아니라, 어떤 관계와 물질과 시간이 어떤 행동을 가능하게 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한 아이의 침묵은 자신감 부족일 수도 있지만, 말보다 손으로 생각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한 아이의 산만함은 집중력 결핍일 수도 있지만, 주변의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연결하는 탐색일 수도 있다.

이것은 모든 행동을 무조건 긍정하자는 뜻이 아니다. 행위주체성은 책임을 포함한다. 다만 책임을 개인에게만 부과하지 말자는 뜻이다. 아이가 공동의 규칙을 어겼다면 그 행동의 결과를 함께 살피되, 그 규칙이 누구에게나 이해 가능했는지, 참여할 기회가 공정했는지, 갈등을 조정할 구조가 있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결국 좋은 교육은 아이에게 “네가 알아서 해”라고 말하는 교육이 아니다. “네 생각은 이 세계를 바꿀 수 있고, 우리는 그 생각이 더 멀리 가도록 함께 조건을 만들겠다”라고 말하는 교육이다.

행위주체성은 아이를 혼자 세우는 힘이 아니다. 서로 의존하면서도 함께 방향을 만들어 가는 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교실은 아이들이 교사의 지시 없이 움직이는 곳이 아니라, 아이의 작은 움직임에도 환경과 관계가 응답하고, 그 응답이 다시 새로운 움직임을 낳는 곳이다.

그때 배움의 주인은 한 사람으로 지정되지 않는다. 배움은 아이와 교사와 또래와 재료와 공간이 함께 만들어 내는 사건이 된다. 그리고 교육의 가장 큰 질문도 바뀐다.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아이와 세계가 서로를 바꿀 수 있도록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만들 것인가.

Sources

← Back to Library

Hatch New Ideas with Glasp AI 🐣

Glasp AI allows you to hatch new ideas based on your curated content. Let's curate and create with Glasp AI :)

Start Hatching 🐣